고화질영화다운 [정동칼럼]사법개혁, 제대로 바꿔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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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화질영화다운 민주당이 추석 전에 검찰·언론·사법 등 3대 개혁을 마무리하겠단다. 반가운 일이다. 뭐 하나 빠뜨리면 안 되는 중요한 과제니 잘 챙겨야겠지만, 각각의 상황은 좀 다르다. 검찰개혁과 언론개혁은 숱한 연구와 논의가 있었으니 그리 어렵지 않을 거다.
문제는 사법개혁이다. 그 필요성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풀어준 판사 지귀연이나 대선 국면에 뛰어들어 이재명 후보를 출마조차 못하게 하겠다던 대법원장 조희대와 대법관들의 전횡만으로도 사법개혁의 필요성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사법개혁은 중요하지만, 만만치 않은 과제이기도 하다. 당장 현행 헌법 규정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 헌법은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헌법 제104조의 규정이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대법원 구성은 오로지 대통령과 대법원장에게 달려 있다. 조희대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관련 공판을 파기환송하며 후보 지위마저 박탈하려고 할 때, 10명이나 되는 대법관이 유죄 취지 파기환송에 나선 것은 그들을 대법관 자리에 앉혀준 사람이 윤석열이었다는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통령은 대법원장을 통해 법원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안전장치는 전혀 없다. 고작해야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는 헌법 제103조 규정이 전부다. 이런 뻔한 요구는 공허하다. 법원의 권위가 원고나 피고, 검사 등 재판 당사자와 달리 저 높은 법대에 앉아 있기에 생기는 게 아니듯, 헌법에 적힌 공허한 규정에 기대 판사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믿을 수는 없다.
영장청구가 검사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것처럼, 재판이 온통 판사의 몫처럼 여겨지게 한 헌법 조문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에선 상식이 된 배심제, 참심제마저 우리에겐 ‘국민참여재판’으로 에둘러가고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나온다는 헌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사법 작용에 대한 국민 주권은 온통 멈춰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그저 판사를 위한 자문적 성격에서 맴돌 뿐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민주주의 국가의 반열에 들어섰지만, 유독 사법부만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법원의 권위를 인정할 만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만한 근거는 사실 어디에도 없다. 판사는 국민이 선출한 공무원도 아니고, 법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사실상 전혀 없기 때문이다.
판사가 사법시험이나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법원의 채용 절차를 통과했다는 것 말고, 그가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도 되는 민주적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판사들이 지귀연이나 조희대가 그랬던 것처럼 내란이나 대선 등 중요한 국면에서만 막가는 건 아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흔히 말하는 가벼운 사건에서는 훨씬 더하다. 검찰 공소장을 그대로 판결문(또는 약식명령)에 옮기는, 유치하게도 오탈자마저 똑같이 베끼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도대체 사법 통제라는 게 작동이나 하고 있을까 싶은 대목도 많다.
사법개혁이 절실하지만, 그저 대법관 숫자를 두 배 또는 몇배로 늘린다고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과제는 아니다. 현행 헌법 체계에선 대법관 숫자를 아무리 늘려도 대법원장 조희대가 고른 사람만이 대법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개혁은 단계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언제 가능할지 모를 개헌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추석 전에는 논란이 적은 사안이나 개헌 없이도 가능한 쟁점을 중심으로 한 걸음 내딛되, 진짜배기 사법개혁은 중단 없이 계속해야 한다. 개헌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많다. 판사 충원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국민참여재판을 실질화해 배심원단의 평의 결과에 구속력이 생기도록 하고, 국민참여재판을 모든 형사사건과 징벌적 손해배상 사건, 노동사건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법원의 무죄 선고에 대해 기계적 항소나 상고를 하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 형사사건에서의 항소나 상고는 법질서 확립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나 피고인에 대한 인권침해 우려가 큰 경우, 법원이 중대한 사실 오인이나 법리 오해를 했을 경우 등으로 제한해야 한다. 법 왜곡죄를 신설해 판사 등 법집행 공무원이 의도적으로 법률을 왜곡하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법원을 새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뭐가 되었든 제대로 논의하고, 제대로 바꿔야 한다.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섬에는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 두 국가가 존재한다. 서로 붙어 있으면서도 분단된 두 나라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인종적으로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아이티는 아프리카 흑인의 비율이 95%로 압도적인 데 반해 도미니카공화국의 흑인 비율은 11%에 불과하다. 본래 히스파니올라섬은 스페인령이었는데, 프랑스가 서쪽 일부를 점령해 지배하다 세계 최초로 흑인 노예들이 세운 독립국가 아이티가 됐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는 ‘설탕’이 있었다.
<설탕 전쟁>은 일상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설탕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과정을 따라가며 그 뒤에 숨겨진 탐욕의 세계사를 엮어내는 대중 역사서다.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열대 기후에서만 재배가 가능했기에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 연안, 카리브해 섬들, 아메리카 대륙 등지에 아프리카계 흑인 노예를 이주시켜 대규모 농장을 운영했다. 설탕 산업은 원주민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무참히 파괴하고, 인구 구성마저 바꿔놨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흑인 노예 착취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최악의 폭력이었다. 동료를 초대해 식사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귀가 잘리고 채찍질을 당했다는 기록이나, 몰래 사탕수수를 먹다 들킨 노예의 입에 다른 노예가 배변을 보게 했다는 기록이 당시의 잔혹함을 전한다.
대규모 인구 이동을 촉진한 설탕 산업은 한민족 디아스포라와도 겹쳐진다. 미국의 영향 아래 설탕 산업의 주요 무대로 부상한 하와이가 한인 최초의 공식 이민이 이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독립운동 자금을 보태며 미주 한인의 역사와도 이어진다. 제국주의 식민 착취와 한민족의 역사가 교차하는 설탕이 만들어낸 세계사의 소용돌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는 매일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과 밥을 먹는다. 어떤 날은 왁자하게 떠들며 밥을 먹고, 또 어떤 날은 “침묵을 두르고” 앉아 밥을 먹는다. 사인용 식탁은 둥근 식탁과 달리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서로가 만든 모서리에 찔리기도 하고, 서로에게 투명인간이 되기도 하면서.
시인에게 외로움이란 “일인분의 식사”가 아니라 “사인용 식탁의 빈자리들”이다. 그리움은 “인간을 본뜬 석고를 보며 그린 소묘”를 “또다시 베끼는 일”이다. 그것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허기를 베끼고 또 베끼는 일이다. 식탁은 많은 기억을 갖고 있다. 사각의 기억, 뭉개진 기억, 깨진 기억, 끓어 넘치는 기억, 뒤집힌 기억, 끝내 지울 수 없는 기억까지. 식탁은 언제나 친근하게 우리를 불러 자리에 앉게 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는 식구도 있다. 함께 앉아 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잘 알아볼 수 없을 때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교역 상대국에 관세를 낮추는 대가로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면서 일종의 ‘수금 행위’를 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역 상대국에 “투자 약속을 통해 돈을 내거나 천문학적인 관세를 맞거나”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 유럽연합(EU), 일본과의 무역 협상 사례를 예로 들면서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교역 상대국과 협상하는지 아니면 무역 인질과 협상하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국 협상단과 면담하기 전 “그들은 돈을 주고 (25%) 상호관세를 낮추겠다는 제안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 직후 그는 한국에 대한 관세를 15%로 낮췄고 한국은 3500억달러(약 486조원) 대미 투자와 1000억달러(약 139조원) 액화천연가스(LNG) 구입 계획을 발표했다.
스콧 린시컴 케이토연구소 부소장은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일종의 글로벌 강탈”이라며 “트럼프는 이런 (강탈) 조건들이 내키지 않는 국가들에 효과적으로 이를 강제하기 위해 미국 관세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대니얼 에임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협상 접근법이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사업가였던 시절 매우 낮은 입찰가를 제시하거나 상대의 약점을 활용해 지렛대를 확보했던 경험에서 유래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면서 “나르시시스트와 협상할 때는 그들이 이겼다고 느끼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일본, 한국, EU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허영심을 이용해 결국엔 실속이 없을 수도 있는 엄청난 규모의 투자 약속을 발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NYT는 각국이 대미 투자 약속을 모호하게 하는 등 창의적 방식으로 관세를 피하려 한다고도 지적했다. 관세와 달리 투자나 구매 약속은 집행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투자 약속을 둘러싼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한국은 3500억달러 투자 대부분이 대출·보증 형식이라고 설명하지만 미국은 자신들이 통제하는 사업에 이 돈이 투자되며 투자 수익의 90%가 미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문제는 사법개혁이다. 그 필요성이야 두말하면 잔소리다. 내란 우두머리 윤석열을 풀어준 판사 지귀연이나 대선 국면에 뛰어들어 이재명 후보를 출마조차 못하게 하겠다던 대법원장 조희대와 대법관들의 전횡만으로도 사법개혁의 필요성은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그래서 사법개혁은 중요하지만, 만만치 않은 과제이기도 하다. 당장 현행 헌법 규정이 걸림돌이 되고 있다. 우리 헌법은 대법원장은 대통령이 임명하고, 대법관은 대법원장의 제청으로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했다. 헌법 제104조의 규정이다.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지만, 대법원 구성은 오로지 대통령과 대법원장에게 달려 있다. 조희대 대법원이 이재명 후보의 선거법 관련 공판을 파기환송하며 후보 지위마저 박탈하려고 할 때, 10명이나 되는 대법관이 유죄 취지 파기환송에 나선 것은 그들을 대법관 자리에 앉혀준 사람이 윤석열이었다는 사실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대통령은 대법원장을 통해 법원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지만, 이에 대한 안전장치는 전혀 없다. 고작해야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따라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라는 헌법 제103조 규정이 전부다. 이런 뻔한 요구는 공허하다. 법원의 권위가 원고나 피고, 검사 등 재판 당사자와 달리 저 높은 법대에 앉아 있기에 생기는 게 아니듯, 헌법에 적힌 공허한 규정에 기대 판사가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믿을 수는 없다.
영장청구가 검사의 전유물처럼 여겨지는 것처럼, 재판이 온통 판사의 몫처럼 여겨지게 한 헌법 조문도 마찬가지다. 다른 나라에선 상식이 된 배심제, 참심제마저 우리에겐 ‘국민참여재판’으로 에둘러가고 있다. 모든 권력은 국민에게 나온다는 헌법의 가장 중요한 원칙에도 불구하고, 사법 작용에 대한 국민 주권은 온통 멈춰 있다. 국민참여재판은 그저 판사를 위한 자문적 성격에서 맴돌 뿐이다.
한국은 세계 최고 민주주의 국가의 반열에 들어섰지만, 유독 사법부만은 과거 군사독재 시절의 수준에서 맴돌고 있다. 법원의 권위를 인정할 만한, 법원의 결정을 존중하고 받아들일 만한 근거는 사실 어디에도 없다. 판사는 국민이 선출한 공무원도 아니고, 법원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사실상 전혀 없기 때문이다.
판사가 사법시험이나 변호사 시험에 합격했고 법원의 채용 절차를 통과했다는 것 말고, 그가 다른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결정을 내려도 되는 민주적 근거는 아무것도 없다.
판사들이 지귀연이나 조희대가 그랬던 것처럼 내란이나 대선 등 중요한 국면에서만 막가는 건 아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흔히 말하는 가벼운 사건에서는 훨씬 더하다. 검찰 공소장을 그대로 판결문(또는 약식명령)에 옮기는, 유치하게도 오탈자마저 똑같이 베끼는 경우도 여전히 많다. 도대체 사법 통제라는 게 작동이나 하고 있을까 싶은 대목도 많다.
사법개혁이 절실하지만, 그저 대법관 숫자를 두 배 또는 몇배로 늘린다고 해결할 수 있을 정도로 만만한 과제는 아니다. 현행 헌법 체계에선 대법관 숫자를 아무리 늘려도 대법원장 조희대가 고른 사람만이 대법관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사법개혁은 단계론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언제 가능할지 모를 개헌만 기다려서는 안 된다. 추석 전에는 논란이 적은 사안이나 개헌 없이도 가능한 쟁점을 중심으로 한 걸음 내딛되, 진짜배기 사법개혁은 중단 없이 계속해야 한다. 개헌이 아니라도 할 수 있는 일, 해야 할 일은 많다. 판사 충원 방식을 획기적으로 바꾸고, 국민참여재판을 실질화해 배심원단의 평의 결과에 구속력이 생기도록 하고, 국민참여재판을 모든 형사사건과 징벌적 손해배상 사건, 노동사건 등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
법원의 무죄 선고에 대해 기계적 항소나 상고를 하는 관행도 바꿔야 한다. 형사사건에서의 항소나 상고는 법질서 확립을 위해 꼭 필요한 경우나 피고인에 대한 인권침해 우려가 큰 경우, 법원이 중대한 사실 오인이나 법리 오해를 했을 경우 등으로 제한해야 한다. 법 왜곡죄를 신설해 판사 등 법집행 공무원이 의도적으로 법률을 왜곡하면 형사처벌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노동법원을 새로 만드는 것도 중요하다. 뭐가 되었든 제대로 논의하고, 제대로 바꿔야 한다.
카리브해 히스파니올라섬에는 아이티와 도미니카공화국 두 국가가 존재한다. 서로 붙어 있으면서도 분단된 두 나라는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인종적으로도 큰 차이를 보인다고 한다. 아이티는 아프리카 흑인의 비율이 95%로 압도적인 데 반해 도미니카공화국의 흑인 비율은 11%에 불과하다. 본래 히스파니올라섬은 스페인령이었는데, 프랑스가 서쪽 일부를 점령해 지배하다 세계 최초로 흑인 노예들이 세운 독립국가 아이티가 됐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는 ‘설탕’이 있었다.
<설탕 전쟁>은 일상에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설탕이 전 세계로 퍼져나간 과정을 따라가며 그 뒤에 숨겨진 탐욕의 세계사를 엮어내는 대중 역사서다. 설탕의 원료인 사탕수수는 열대 기후에서만 재배가 가능했기에 유럽 국가들은 아프리카 연안, 카리브해 섬들, 아메리카 대륙 등지에 아프리카계 흑인 노예를 이주시켜 대규모 농장을 운영했다. 설탕 산업은 원주민 고유의 역사와 문화를 무참히 파괴하고, 인구 구성마저 바꿔놨다.
이 과정에서 벌어진 흑인 노예 착취는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른 최악의 폭력이었다. 동료를 초대해 식사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귀가 잘리고 채찍질을 당했다는 기록이나, 몰래 사탕수수를 먹다 들킨 노예의 입에 다른 노예가 배변을 보게 했다는 기록이 당시의 잔혹함을 전한다.
대규모 인구 이동을 촉진한 설탕 산업은 한민족 디아스포라와도 겹쳐진다. 미국의 영향 아래 설탕 산업의 주요 무대로 부상한 하와이가 한인 최초의 공식 이민이 이루어진 곳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독립운동 자금을 보태며 미주 한인의 역사와도 이어진다. 제국주의 식민 착취와 한민족의 역사가 교차하는 설탕이 만들어낸 세계사의 소용돌이라고 할 만하다.
우리는 매일 식탁에 둘러앉아 가족과 밥을 먹는다. 어떤 날은 왁자하게 떠들며 밥을 먹고, 또 어떤 날은 “침묵을 두르고” 앉아 밥을 먹는다. 사인용 식탁은 둥근 식탁과 달리 빈자리가 더 크게 다가온다. 우리는 피 한 방울 섞이지 않아도 가족이 되기도 한다. 때로는 서로가 만든 모서리에 찔리기도 하고, 서로에게 투명인간이 되기도 하면서.
시인에게 외로움이란 “일인분의 식사”가 아니라 “사인용 식탁의 빈자리들”이다. 그리움은 “인간을 본뜬 석고를 보며 그린 소묘”를 “또다시 베끼는 일”이다. 그것은 영원히 채울 수 없는 허기를 베끼고 또 베끼는 일이다. 식탁은 많은 기억을 갖고 있다. 사각의 기억, 뭉개진 기억, 깨진 기억, 끓어 넘치는 기억, 뒤집힌 기억, 끝내 지울 수 없는 기억까지. 식탁은 언제나 친근하게 우리를 불러 자리에 앉게 하지만, 끝내 돌아오지 않는 식구도 있다. 함께 앉아 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잘 알아볼 수 없을 때도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 등 교역 상대국에 관세를 낮추는 대가로 대규모 투자를 요구하면서 일종의 ‘수금 행위’를 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는 트럼프 대통령이 다른 나라의 시장을 개방하고 미국의 무역적자를 줄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교역 상대국에 “투자 약속을 통해 돈을 내거나 천문학적인 관세를 맞거나” 선택할 것을 강요하고 있다고 전했다.
특히 한국, 유럽연합(EU), 일본과의 무역 협상 사례를 예로 들면서 “통상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교역 상대국과 협상하는지 아니면 무역 인질과 협상하는지에 관해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한국 협상단과 면담하기 전 “그들은 돈을 주고 (25%) 상호관세를 낮추겠다는 제안을 가지고 왔다”고 했다. 그 직후 그는 한국에 대한 관세를 15%로 낮췄고 한국은 3500억달러(약 486조원) 대미 투자와 1000억달러(약 139조원) 액화천연가스(LNG) 구입 계획을 발표했다.
스콧 린시컴 케이토연구소 부소장은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일종의 글로벌 강탈”이라며 “트럼프는 이런 (강탈) 조건들이 내키지 않는 국가들에 효과적으로 이를 강제하기 위해 미국 관세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고 짚었다.
대니얼 에임스 컬럼비아대 경영대학원 교수는 트럼프 대통령의 무역 협상 접근법이 부동산 개발업자이자 사업가였던 시절 매우 낮은 입찰가를 제시하거나 상대의 약점을 활용해 지렛대를 확보했던 경험에서 유래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그러면서 “나르시시스트와 협상할 때는 그들이 이겼다고 느끼게 만들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일본, 한국, EU 역시 트럼프 대통령의 허영심을 이용해 결국엔 실속이 없을 수도 있는 엄청난 규모의 투자 약속을 발표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NYT는 각국이 대미 투자 약속을 모호하게 하는 등 창의적 방식으로 관세를 피하려 한다고도 지적했다. 관세와 달리 투자나 구매 약속은 집행 여부를 확인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투자 약속을 둘러싼 혼선도 빚어지고 있다. 한국은 3500억달러 투자 대부분이 대출·보증 형식이라고 설명하지만 미국은 자신들이 통제하는 사업에 이 돈이 투자되며 투자 수익의 90%가 미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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