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니밀리 디지털 시대에도 대체 불가능한 ‘물성’의 힘…그가 물건을 모으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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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직업적인 연구자나 수집가가 아니라 학원강사라는 생업이 있고, 수집을 위한 별도의 장소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의 수집품에는 대체로 몇 가지 소소한 조건이 더 따라붙는다. 가볍고 자리를 덜 차지할 것, 너무 비싸지 않을 것.
지난 8월 25일 ‘역사 컬렉터’ 박건호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가장 먼저 받은 인상은 ‘수집가의 집’ 같지 않다는 점이었다. 널찍하고 말끔한 아파트 거실엔 커다란 나무 테이블 외에는 ‘쓸모없는 것’이라곤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하지만 테이블 한쪽에 그가 미리 꺼내놓은 커다란 종이 상자 안에서는 끊임없이 수집품이 쏟아져나왔다. 물론 상자 하나가 전부는 아니었다. 인터뷰가 진행되는 내내 집안 어딘가에선 계속 새로운 물건이 나왔고, 이내 오래된 종이 뭉치 특유의 냄새가 공간을 가득 채웠다. 그는 수많은 종이 더미 속에서도 단번에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언급된 물건을 찾아내곤 했다.
“따로 (수집품의) 전자화나 목록화를 하진 않아요. 웬만해서는 다 기억 속에 있죠.”
그가 처음 수집을 시작한 계기는 1987년 대학 학부생 시절 신석기 시대 유적 답사를 하러 갔다가 우연히 빗살무늬 토기 조각을 발견하면서였다. 당시 그는 토기 조각을 집어 들고는 전율을 느꼈다. “그게 BC 8000년대 유적이었으니까, 무려 1만 년 전 사람들이 썼던 물건이 제 손안에 있었던 거예요. 뭐라 설명할 수 없는 신비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이와 비슷한 경험은 어렸을 때도 있었다. 농촌 출신인 그는 어릴 적 일본에서 수입해온 감자 박스 안에 놓여 있던 조그만 일본 동전을 발견했다. “일본이라는 곳이 제게는 생소하고, 교과서에서나 볼 수 있었던 관념이었지만 이 동전을 만지면서 그곳의 물성을 직접 만져볼 수 있었던 거죠.” 이후 그는 고등학교와 입시학원에서 역사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해 역사 교과서에 나오는 사건과 관련된 자료를 하나둘 모으기 시작했다. “한 수업에 3개 정도는 보여주려고 했던 것 같아요. 학생들에게 직접 만져보게 한 적도 있고요. 교과서에서만 보던 사건이 물건을 직접 보고 만져보는 순간 확 현재로 다가오는 거죠.”
그에게 있어 사료의 ‘물성(物性)’은 그 무엇보다 중요했다. 수집에 대한 좀더 체계적인 공부를 위해 40대에 기록학 대학원에 입학했지만, 그의 기대와는 달리 학과 과정은 대체로 전자문서만을 다루었다. 그래서 당시 그는 석사 논문 대신 사료에 관한 책을 쓰기로 마음먹었다. “에너지를 다른 데 쏟느니 차라리 그 시간에 제가 애정을 가지고 있는 ‘옛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를 쓰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특히 생활사, 일반인들의 삶의 흔적이 짙게 배어든 ‘물건’에 흥미를 가진다. 그는 상자에서 돌돌 말린 한 두루마리를 꺼내 들었다. ‘사변을 당도하야’라는 제목이 서두에 적힌 이 두루마리는 ‘정숙’이라는 인물이 ‘계묘년’(1963년)에 6·25전쟁 당시 자신의 어린 시절부터의 삶을 되돌아보는 내용이다. 정숙씨의 어머니는 6·25전쟁 때 곡식을 구하러 갔다가 행방불명이 됐고, 아버지는 시각장애인이었다. 정숙씨는 어린 나이에 아버지와 동생까지 건사하는 소녀 가장이 될 수밖에 없었다. 쓰다 보니 종이가 부족해 중간중간 몇 번이고 덧대어 연결했고, 그렇게 정숙씨의 신산한 삶을 굽이굽이 적은 두루마리는 무려 길이가 15m에 달했다. 마지막엔 날짜와 함께 한 문장이 적혔다. “사람 팔자 몰라요. 정숙 씀.”
1930년대에 울산, 남부지방 일대를 돌며 철도공사 일을 하던 한 청년이 적은 <철도공사여행일기>도 그가 애정을 품고 있는 수집품 중 하나다. 빳빳한 달력을 뒷면으로 접은 이면지에 가지런한 ‘볼펜’ 글씨로 거의 오자나 고친 자국도 없이 단정하게 적혀 있다. 단순히 신변잡기만을 적은 게 아니라 어떤 지역에 가면 마치 인류학자처럼 그 지역의 독특한 풍습을 그림으로 묘사하고, 그것을 자신의 지역 풍습과 비교하기도 했다. 그런데 일기 치곤 지나치게 정갈하다. 박건호씨는 말한다. “여기 접힌 이면지 달력 사이를 벌려보면 1971년 달력이라고 쓰여 있어요. 그 말은 이 ‘일기’를 처음 쓴 이후 약 40년 뒤에 직접 본인이 달력을 곱게 접어 볼펜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정서한 거죠.” 자기가 젊은 시절에 썼던 일기를 40년 후에 다시 정성 들여 옮겨적은 사람의 마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박씨는 말했다. “제가 오래 수집을 하다 보니 느끼는 건데, 의외로 과거의 사람들은 요즘 사람들보다 굉장히 많은 기록을 남겼어요. 사소한 책 속 낙서라든지 평범한 전단 뒤 연필 글씨 메모 같은 것도 그날의 생생한 힘을 품고, 그 시대를 보다 재밌게 보여주죠. 이런 글들을 읽으면서 그 속의 삶을 맞닥뜨릴 때면 그들의 삶을 알려야 할 일종의 의무감을 느낍니다.”
꼭 직접적인 ‘기록’이 아니더라도 어떤 물건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문자 역사’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역사의 미묘한 순간, 속살을 드러낸다.
예를 들면, 그의 수집품 가운데는 <황국신민서사>를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은 작은 종이가 있다. “통상 <황국신민서사>를 강제로 외우게 한 민족 말살 통치기에는 조선어(한글)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고 생각하곤 합니다만, 여전히 일본어를 못하는 사람이 많았기에 아이러니하게도 많은 사람에게 강제로 <황국신민서사>를 외우게 하기 위해선 한글 음차본이 필요했던 것이죠.”
이어 박씨는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그 사진의 왼편에는 탱크 위에 올라탄 미군들이 있고 오른편에는 흰옷을 입은 동네 사람들 수십 명이 어수선하게 서 있는 모습이 담겨 있다. 사진을 뒤집어보면 뒷면에는 영어 손글씨로 ‘미군의 상륙을 환영하는 사람들…’이라는 식의 내용이 적혀 있다. 재밌게도 사진 속에서 조금이라도 미소를 띤 사람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청년 단 한 명뿐이고, 나머지는 대체로 무표정하거나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다. 왜 이들의 표정은 이렇게 굳어 있을까? 사진 속 긴장된 표정의 단서는 같은 시기 전라북도에 살던 한 인물의 ‘자서전’에서 찾을 수 있다. 그는 미군 상륙 당시의 국내 분위기와 개인적인 감상을 자세히 자신의 자서전에 적고 있는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일제로부터 미군은 적, 괴물이라고 교육받았기에 당대인은 미군을 ‘우리를 도와주러 온 우방’이 아닌 “외계인”이나 “식인종”처럼 느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이러한 낯섦과 긴장, 호기심, 두려움, 흥분이 한데 뒤섞인 미묘한 분위기를 우리는 당대에 찍힌 한 장의 사진을 통해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것이다.
그의 수집품은 수많은 우연과 깜짝 놀랄 만한 작은 발견이 만들어낸 하나의 생태계다. 그는 실제로 대부분의 사료를 보여줄 때, 하나의 사료만을 꺼내 들기보다는 여러 가지 수집품을 한 번에 여럿씩 소개했다. 예를 들면 한 개인적인 엽서에서 시작된 호기심이 그 엽서 속 주인공이 겪었던 당대의 사건과 그가 쓴 수기로 연결이 되고, 해방 이후 황국신민서사비를 재활용한 비석이 찍힌 졸업식 단체 사진이 다른 비석이 찍힌 사진과 연결이 되는 식이다.
“사료를 수집하다 보면 연관이 있을 것이라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의외의 사건들이 서로 연결이 되고, 한 사료에서 해결되지 못했던 물음이 다른 사료에서 해결이 되기도 해요. ‘화엄사상’은 세상의 모든 것들이 연결돼 있다는 내용인데요. 수집하면서 항상 이를 느낍니다.”
단서(사료)에서 색다른 사실을 연결하고, 추론하는 그의 방식은 마치 “탐정”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그는 단순히 물건을 수집하는 것을 넘어 새로운 가설을 세우고, 팩트를 발굴하는 경우도 있다. 그는 일제강점기 한 고장의 범죄인 명부를 파고들다가 역사에서 잊혔던 11명의 독립운동가를 새롭게 발굴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물었다. 이 모든 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꼭 손에 만질 수 있는 ‘실제 물건’이어야 할 필요가 있을까? 오늘날 수많은 자료는 디지털화됐고, 사진이나 텍스트는 인터넷이나 인쇄물을 통해서도 볼 수 있는 데 말이다. 심지어 이젠 생성형 AI에게 ‘물어보면’ 무엇이든 찾아주고 발굴해준다는 시대다.
그는 오랫동안 곰곰 생각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야기하는 내내 그의 두 손은 시종일관 사료들을 “만지고” 있었다.
“저는 집필할 때, 반드시 물건을 앞에 둬야 글이 써져요. 모니터에 사진을 띄워놓는 것으로는 부족해요. 직접 제 앞에서 그 물건을 만지며 디테일을 느껴야지만 비로소 글이 써지더라고요. 제가 그렇게 생동감을 느끼면서 쓰면 (글에도) 그게 묻어나겠죠.”
“우주 만물이 다 낱개로 떨어진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끈으로 연결돼 있는 거거든요. 하나의 사료는 그 시대의 ‘작은 조각’에 불과하지만, 제가 눈을 감고 이 물건에 손을 대면 1945년으로 갈 수 있죠. 저는 사료를 그 시대에 통하는 게이트웨이라는 개념으로 생각합니다. 디지털로 그게 완전히 대체될까요? 글쎄요.”
해군호텔 예식장 운영 업체와 해군 수뇌부 간 유착 의혹을 수사 중인 경찰이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는 서울 영등포구에 있는 해군호텔 예식장에 대해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고 26일 밝혔다.
경찰은 해군호텔 예식장을 운영하는 업체들이 지난 13년간 특혜성 독점 계약을 이어왔다는 의혹을 들여다보고 있다. 서울 영등포와 경남 진해 등 두 곳의 해군호텔 예식장은 A·B 두 업체가 2012년부터 독점 운영해왔다. 수익 배분은 업체가 70%, 해군이 30%를 가져가게 되어 있다. 해군에 불리한 조건임에도 해군은 수의계약을 통해 이들 업체의 독점을 보장해준 것으로 알려졌다.
부승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해군은 지난 10년간 세 차례 자체 감사에서 해군호텔 웨딩홀 운영의 위법·부적정 사례를 적발하고도 동일한 사업자와 계약을 유지했다.
경찰은 두 업체가 전·현직 해군 고위 장성들에게 현금, 한우 선물세트, 기념품 등을 제공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체 대표와 이종호 전 해군참모총장이 여러 차례 골프를 친 사실도 확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해군은 지난해 12월 자체 감찰 후 이 사건을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고발했다. 이후 사건은 서울경찰청 반부패수사대로 이관됐다. 해군은 지난 3월 두 업체에 계약 해지를 통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 대상 물품이나 수색 시점 등 구체적인 사항은 수사 중이어서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9월 한 달을 ‘스포츠 폭력행위 특별 신고·상담 기간’으로 지정하고 체육계 폭력·성폭력 행위 근절을 위한 단호하고 강력한 조치를 추진한다고 28일 밝혔다.
문체부는 대한체육회, 스포츠윤리센터 등과 함께 폭력 행위자의 체육계 진입 차단, 폭력행위 무관용 처벌, 외부 감시 체계 강화, 체육계 자정 캠페인, 피해자 지원 확대 등의 조치를 추진할 예정이다.
우선 폭력 행위 이력자들에 의한 피해 재발을 막기 위해 범죄·징계 이력자 감시망을 강화하고, 이들의 체육계 재진입을 차단하기로 했다. 스포츠윤리센터와 대한체육회 간에 징계 정보를 실시간으로 공유하도록 시스템을 개선하고, 각종 대회 출전을 위해 필요한 대한체육회 경기인 등록 절차에서 범죄·징계 이력자 등록을 불허할 계획이다.
현행 국민체육진흥법은 선수 신체에 폭행을 가하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를 한 지도자에게 자격 취소 또는 5년 이하 범위에서 자격 정지를 할 수 있게 돼 있지만 앞으로 자격 취소를 원칙으로 한다.
해당 체육단체가 ‘제 식구 감싸기’ 식의 미흡한 징계를 내리면 스포츠윤리센터가 재징계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고, 재징계 요구에도 이를 이행하지 않으면 문체부가 재정지원 중단 등을 추진할 수 있도록 스포츠윤리센터 조사권과 문체부 조치 권한을 대폭 강화한다.
외부 감시 체계도 강화해 스포츠윤리센터에 인권보호관을 상시 배치, 전국 학교 운동부 3989곳과 실업팀 847개, 전국 규모의 대회 등 현장을 주기적으로 감시한다. 피해자 보호와 관련해서는 학생 선수 맞춤형 폭력 피해 대응 지침을 제작, 배포하고, 2026년부터 피해자에 대한 의료, 상담, 법률 등 지원을 500만원에서 1000만원으로 늘린다.
최휘영 문체부 장관은 “단 한 번의 폭력도 용납되지 않는 문화가 체육계에 확고히 자리 잡도록 체육계와 힘을 모아 관련 조치들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다짐했다.
연인 관계의 주한미군에게 성폭행을 당하고 이후에도 수차례 지속적인 강간과 폭행 등 피해를 입었는데, 검찰이 증거가 부족하다며 ‘준강간치상 혐의’는 불기소한 사건이 뒤늦게 알려졌다. 지속한 피해 끝에 겨우 상대방을 고소한 김수현씨(가명·27)는 25일 기자와 인터뷰하며 “원치 않은 성관계 때문에 성병을 얻고, 극심한 스트레스와 우울증으로 정신과 진료까지 받고 있는데 한국 수사기관은 가해자 말만 들어주는 것 같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씨는 미국 국적의 공군 A씨(34)와 2023년 7월 말 무렵부터 사귀게 됐다. 교제를 시작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사건이 일어났다. 김씨는 “술을 마시고 자던 도중에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 깼더니, 상대방이 내 옷을 모두 벗겨 성폭행하고 있는 상태였다”며 “이후 질염 증상이 있어서 병원에 갔더니 인유두종바이러스(HPV) 등 성병에 감염됐다고 하더라”고 했다.
[더 이상 한 명도 잃을 수 없다 - 번외편]“‘강압적 통제’부터 ‘교제폭력’으로 보는 호주, 젠더폭력의 ‘공적 개입’ 강조해”
[더이상 한 명도 잃을 수 없다]교제 관계, 모호해서 처벌 불가? 해외에선 ‘이렇게’ 한다
큰 충격을 받은 김씨는 이별을 고했지만, A씨는 “미안하다. 제발 얼굴만 한번 보자” “병원비를 전부 책임지겠다”며 붙잡았다. 김씨는 “대학생이라 검사와 치료 비용이 부담스러웠고, 부모님께 이런 내용을 털어놓기엔 죄책감이 너무 컸다”며 “연인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는 충격이 커서 누구에게도 도움을 구할 수가 없었다”고 했다.
김씨가 지난해 9월 고소하기 전까지, A씨는 수차례 상대방 의사에 반한 성관계를 했고 김씨의 뺨을 때리거나 주먹을 휘두르는 일도 잦았다. 사회적, 경제적으로 고립된 김씨는 계속 A씨와 관계를 이어나갈 수밖에 없었다. 스킨십을 받아주지 않으면 목을 조르는 일까지 벌어졌다.
1년이 지난 뒤에 겨우 A씨를 고소했는데 한국 수사기관은 끊임없이 김씨를 의심했다. 김씨는 전문가 의견을 포함한 정신과 진단서, 성병 감염 내역, 폐쇄병동 입원 기록 등 자료를 제출했다. 그러나 검찰은 준강간치상에 대해서는 ‘혐의없음’으로 처리했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불기소 이유 통지서에서 “성병 감염 시기나 경로를 객관적으로 특정하기 어려우며, 잠복기 등을 고려하면 이전에 감염됐을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김씨가 A에게 콘돔이라도 써달라고 말한 것을 들어 “심신상실 또는 항거불능 상태였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며 “고소인의 진술 내용 전반을 그대로 신빙하기 어렵다”고 했다. 김씨는 “검찰에서는 ‘강간당했다면서 왜 계속 상대방과 만났나’ ‘성병에 왜 그렇게 예민하냐’ 같은 질문을 했다”며 “피해자라면 ‘이래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고, 조사가 아니라 추궁같았다”고 설명했다.
이런 김씨를 보호한 건 미군이었다. 한국 수사기관에서는 “접근금지 보호조치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며 스마트워치만 1달 정도 지급하는 데 그쳤는데, 미 공군 특별수사국(AFOSI)은 A씨에게 즉시 접근 금지 조처를 했다.
사건 당일은 물론 관계 전후 사정을 진술하는 과정, 질문의 내용, 피해의 심각성을 판단하는 잣대도 달랐다. 미 국방성 이름으로 나온 ‘범죄 피해자 및 참고인(증인)을 위한 군사재판 정보 안내’ 자료에는 피해자의 권리, 위협받을 때의 대처 방법, 법률지원 내용이 상세히 나와 있었다. 수사관은 김씨 진술을 들으면서 “A의 주변인에 대해서도 아는 대로 알려달라”고 했다. 데이트폭력과 성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은 패턴이 있어서, 김씨와의 관계뿐 아니라 이전의 행적과 평소 행실을 되짚어 추가 피해가 없는지 살펴보기 위해서라고 설명했다.
김씨가 “목이 졸렸다”고 진술하자, ‘목졸림’에 대한 항목만 수십가지 쓰인 평가지를 작성하게 했다. 어떻게 목이 졸렸는지, 지속 시간이나 강도는 어땠는지, 이후 증상은 어땠는지 등을 하나하나 적었다. 한국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을 때는 경험하지 못한 절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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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는 “미군에서 17시간 가까이 조사를 받으면서 한 번도 ‘피해자다움’을 요구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내가 생각하지 못한 부분까지 세밀하게 물어봐서 정말 이 사건에 관심이 있구나 느꼈다”며 “성폭력 피해자들이 겪는 전형적인 심리적 반응과 행동 패턴에 대해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고, 조사 과정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이 아닌 타국에서 더 보호받고 있다고 느꼈다”고 했다.
그러면서 “연인 사이에서 폭력을 한번 당하면 그 자체로 매우 혼란스러워 판단 능력이 망가져 제대로 된 결정과 신고에 이르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며 “그렇기에 더더욱 교제폭력을 연인과의 ‘단순 다툼’으로 보면 안되는데, 한국 수사기관에선 계속 2차 가해를 당하기만 한 것 같다”고 말했다.
검찰은 A씨를 특수상해와 폭행 혐의만으로 재판에 넘겼다. 검찰 관계자는 준강간치상 혐의를 제외한 데 대해 “피의자의 개인정보와 관련된 내용이라 상세히 밝힐 수 없다”면서 “검찰의 불기소 처분에 불복할 경우 재항고나 법원 재정신청 등 절차를 밟으면 된다”고만 말했다.
A씨에 대한 첫 공판은 수원지법 평택지원에서 26일 열린다.
▼ 김정화 기자 clea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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