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자료 [기고]‘케데헌’ 마음을 잇는 메아리, 화엄의 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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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에서 주인공 루미는 데몬을 퇴치하는 헌터인 동시에 데몬의 피도 흐르고 있는, 다시 말하자면, 어둠으로서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을 겪는 인물이다. 무대에서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 당황한 그가 다시 노래할 수 있게 된 원동력은 반악마라는 자신의 ‘그림자’를 직시했기 때문이다. 도망가는 것보다 세상 앞에 스스로를 찾기 위한 도전을 택한 자각의 순간이 자아 정체성의 회복이자 곧 목소리의 회복으로 이어진다.
목소리를 되찾은 루미와 동료들은 각자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긍정하고, 함께 노래를 부르자 새로운 형태의 레인보 혼문(악령의 침입을 막는 결계)이 완성된다. 부정하고 숨기고 싶었던 정체성의 한 부분을 자신으로 받아들여나가는 이 과정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사회가 잊고 있는 중요한 심리학적 통찰을 시사한다. 융 심리학에서 말하는 자신의 ‘그림자’를 마주할 용기가 곧 자신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치유하는 힘과 맞닿아 있다는 사실이다.
특히 인상적인 여운을 남긴 작품의 한 장면을 꼽는다면, 루미가 사자보이즈의 리더 진우와 함께 ‘프리(Free)’를 부르는 순간이다. 단순히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적 구도가 아니라 하나가 전체(일즉일체: 一卽一切)이자 전체가 곧 하나(일체즉일: 一切卽一)인, 즉 모든 존재가 서로 원융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장면이다.
우리의 삶 역시 단절된 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홀로 있거나 홀로 일어나는 일이 없이 우주의 모든 존재와 현상이 상호의존하며 하나로 연결돼 있다. 누군가의 상처와 회복도 결코 나와 무관할 수 없으며, 적대자라 하더라도 타인의 아픔을 외면하는 순간 나 역시 온전히 치유될 수 없다는, 화엄 사상의 핵심 개념인 법계연기를 드러낸다.
<케데헌>의 대표곡 ‘골든’의 노랫말은 전 세계를 홀린 ‘케데헌’ 현상이 지닌 공감과 치유의 에너지를 가장 분명히 담고 있다. “함께라서 우린 더 빛나고 있어. 빛날 거야, 황금빛처럼 빛날 거야” “더 이상 숨지 않아, 나는 빛나고 있어. 마치 태어날 때부터 이럴 운명이었던 것처럼”. 이러한 자신에 대한 믿음, 성장, 그리고 정체성 회복이라는 메시지를 담은 루미의 선언은 혼문의 균열이 봉합되는 장면과 교차하며 관객들에게 현실의 스트레스와 불안에 대한 상징적 해소책을 제공한다. 이러한 카타르시스 효과는 현대인들의 우울감과 불안감을 고려할 때 중요하게 다가오는 것이다.
헌트릭스 여정이 전하는 울림은 어쩌면 단순하다. 자신의 ‘그림자’를 부정하지 않고 마주할 때, 우리는 더 큰 힘을 얻는다. 그렇게 탄생한 골든 혼문이 아닌 새로운 형태의 레인보 혼문의 힘은 나뿐만 아니라 공동체를 회복시키고 나아가 세계와 연결되는 것이다. 루미의 막힘 없는 고음이 전하는 그 짜릿한 전율이 한 캐릭터를 넘어 우리 모두의 삶을 비추는 노래가 된다. 이는 하나가 곧 전체를, 전체가 곧 하나를 비춘다는 화엄선 사상의 근본 사상을 여실히 전하고 있다.
<케데헌>은 K팝 아이돌과 악령 간의 싸움이라는 화려한 판타지 안에서, 극심한 갈등과 분열 속에 차별과 단절이 일상이 된 시대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되묻는다. 자신의 그림자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그리고 나의 성장이 집단의 화합과 대립하지 않고 상호보완적으로 나아갈 수 있는지. 질문 앞에 선 순간, 루미의 노래는 더 이상 스크린 속 서사가 아니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다시 살아 숨쉬며 나와 세계를 향한 길을 밝히는 울림이 된다.
마지막 결전을 준비하는 한화의 카드가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정규리그 2위를 확보한 한화는 오는 26일부터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선두 LG와 3연전을 치른다. LG는 23일 현재 2위 한화에 3경기 차 앞서 있다. 우승 매직넘버 ‘5’를 남겨뒀다.
일단 양 팀의 시즌 마지막 승부는 정규리그 우승팀이 결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펼쳐진다. 둘 다 7경기씩 남겨뒀다. 주말 정면 격돌하기 전인 24~25일 LG는 NC·롯데와, 한화는 SSG·두산과 각각 경기한다. LG가 모두 이기고 한화가 모두 진 채 만나더라도 LG의 우승 매직넘버는 ‘1’이 남는다. 한화의 역전 불씨는 살아 있다.
LG는 대전에서 우승 축포를 터트리겠다는 의지가 확고하다. 염경엽 LG 감독은 일찌감치 한화와의 3연전 선발투수로 1·2·3선발인 앤더스 톨허스트, 요니 치리노스, 임찬규를 예고했다.
반대로 김경문 한화 감독은 신중하다. LG전에 나설 선발투수를 아직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맞대결이 임박하면서 예측은 가능하다. 현재 로테이션상으로는 라이언 와이스-류현진-코디 폰세-문동주 순으로 선발 대기 중이다.
한화-LG 3연전의 1차전에는 지난 20일 수원 KT전에 선발 등판한 에이스 폰세의 등판이 굳어지는 모양새다. 이번 시즌 KBO리그 최고의 투수로 평가받는 폰세는 개막 17연승을 달리다 지난 KT전에서 첫 패배를 당했다. 그러나 시즌 전체 승부를 가를 수도 있는 3연전에서 기선을 제압해야 할 첫날, 한화가 낼 수 있는 최고의 카드다.
2·3차전은 김경문 감독의 결정에 달렸다. 지난 16일 광주 KIA전에 등판한 2선발 와이스, 17일 광주 KIA전에 등판한 류현진, 한 번 선발 등판을 건너뛰고 20일 KT전에서 중간계투로 마운드에 올랐던 문동주까지 모두 LG전에 맞춰 등판할 수 있다. 그러나 무리한 변화는 주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24일 한화를 상대하는 이숭용 SSG 감독은 와이스의 선발 등판을 예상하고 준비했다. 이번 시즌 16승(4패) 평균자책 2.85를 기록 중인 와이스는 SSG를 상대로 3승1패 평균자책 3.00으로 강한 면모를 보였다.
25일 한화를 만나는 조성환 두산 감독대행은 “류현진이 선발로 나온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상대 팀들은 한화의 선발을 순서 그대로 예상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문동주가 폰세에 이어 27일 LG와의 2차전에 선발로 나서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28일에는 대체 선발이 들어가야 된다. 한화는 지난 18일 KIA전에 선발로 나가 3이닝 무안타를 기록한 윤산흠, 15일 키움전에 첫 선발 등판을 한 신인 정우주를 대체 선발 카드로 쥐고 있다.
그러나 또 하나의 변수가 있다. 한화는 많은 비가 예보된 24일 SSG전 우천 순연을 내심 기대하는 눈치다. 그러면 로테이션이 아주 달라진다. 와이스나 류현진 중 한 명이 LG전으로 이동, 한화는 대체 선발 필요 없이 최상의 선발 카드 셋을 모두 LG 3연전에 내 여유있게 경기할 수 있다.
만일 정규리그 144경기에서 동률이라도 되면 1위 결정전이 펼쳐질 수도 있다. 주말의 맞대결 3연전이 너무도 중요하다.
1876년 개항으로 조선이 자본주의 세계에 편입된 이래 약 150년 동안 우리 자신의 운명을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 때가 있었다. 열강이 1905년 러일전쟁을 마무리하는 과정이 그랬고, 한반도에서 신탁통치를 실시하기로 연합국이 합의하는 과정이 그랬다. 그 결과는 식민과 분단이었다. 우리의 신세는 열강이 자기 마음대로 깔아 놓은 철길만을 달려야 하는 기차와 같았다.
두 차례의 역사에 우리는 당사자로 개입한 적이 없었다. 움직일 여지도, 발언할 기회도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두 번째의 역사는 조금 다른 측면도 있었다. 한반도 신탁통치를 둘러싼 갈등이 전면에 부상하기 이전인 1945년 8월까지 우리가 노출한 예비적 틈새는 있었다.
임시정부 승인 운동의 신변수, 폴란드 문제
식민지 조선을 연합국이 공동으로 관리한 후 독립시킨다는 구상은 1942년 미국이 먼저 제기했다. 절대 독립을 목표로 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는 이 구상을 수용할 수 없었다. 김구 주석은 1943년 7월 장제스 중국국민당 주석을 면담하고 지지를 부탁했다. 장제스는 충칭 독립운동 세력의 통일과 항일투쟁에서 구체적인 성과가 필요하다고 답변했다. 김원봉이 이끄는 조선민족혁명당이 임시정부에 합류하는 등 충칭의 독립운동 세력은 결집해갔다. 한국광복군도 중국 전선에서 일본군을 상대로 선무(宣撫)공작을 확대하는 한편 미얀마 전선의 영국군 선전대에 인면전구(印緬戰區)공작대를 파견했다.
한반도 문제에 대한 미·영·중의 기본 방침은 1943년 11월 카이로회담에서 결정되었다. 임시정부는 여기에 대응해 반대 집회를 개최하는 한편 중국의 각 기관에 비망록을 보내 임시정부를 승인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했고, 미·영·중·소 정부와 망명정부에도 영문의 성명서와 비망록을 보내는 ‘임시정부 승인 운동’을 벌였다. 이들 가운데 프랑스, 폴란드, 체코 망명정부가 ‘공식 회답’했다.
그런데 연합국의 승인을 받으려 노력하고 있던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미래 운명을 가늠할 수 있는 뜻밖의 상황이 1944년 7월부터 펼쳐졌다. 시작은 소련군이 폴란드의 루블린을 나치로부터 해방한 다음날, 공산 단체인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가 결성되면서였다.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는 이미 런던에 있는 망명정부, 곧 영·미도 승인한 망명정부를 부인했다. 소련을 인정하지 않고 있던 망명정부는 국내에 연계된 지하조직까지를 포함해 10개 사단 규모를 지휘하고 있었다. 폴란드에 서로를 부인하는 두 개의 정부가 등장한 것이다.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결집한 충칭의 독립운동가들은 관심을 집중했다. 게다가 오래전부터 독립운동가들 스스로 우리가 ‘극동의 폴란드’이고,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극동의 폴란드 망명정부’라고 말할 정도로 언제나 폴란드 문제를 호의적으로 대했다.
김구는 폴란드 문제를 둘러싼 새로운 정세의 출현을 활용해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역량을 강화하는 명분으로 삼았다. 그는 장제스에게 보낸 1944년 9월5일자 편지에서 임시정부가 한국의 유일한 ‘혁명영도기구’라고 말하며, 중국 측의 충분한 원조를 받아 임시정부를 중심으로 신속하게 국내외 조직을 강화한다면, 폴란드처럼 서로 대립하는 정부가 병존할 우려를 불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21일에도 이승만에게 편지를 보내 소련이 폴란드에서 사용한 방법 그대로, 10만명의 고려인 장교와 병사를 선봉 부대로 편성해 한반도에 보낼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소련이 고려인을 활용할 수 있다는 상상을 이승만도 했다. 그는 블라디보스토크에 ‘조선해방위원회’가 있으며, 소련이 위원회를 한반도에 들여보내 정부를 수립할 거라고 주장하는 편지를 미국 국무부에 보냈다. 이에 중국과 소련 주재 미국대사는 조사 후 실체 없는 위원회라고 보고했다.
초점을 흐리는 우리 안의 시선
두 개의 임시정부가 존재하고 갈등하는 상상은 1944년 12월31일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가 바르샤바 임시정부로 이름을 바꾸고, 1945년 2월의 얄타회담을 거치며 더욱 확산했다. 1월5일 소련이 바르샤바 임시정부를 승인한 데다 런던에 망명정부가 있음에도 루스벨트·처칠·스탈린이 얄타회담 때 ‘새로운 폴란드 임시정부’를 수립하는 데 ‘합의’했기 때문이다.
세 강대국은 국내외에 있는 폴란드의 ‘민주적’이고 반나치적인 정당 및 사회단체를 참여시켜 그들끼리 협의해 임시정부를 구성하고, 임시정부가 자유 총선거를 시행하여 통일된 공식 정부를 출범시킬 계획이었다. 이때 두 임시정부도 n분의 1일 수밖에 없었다. 얄타 합의는 한국 독립운동의 유일한 영도기구라고 자부하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충격적인 결말이었을 것이다.
물론 얄타회담 이후 구체적인 논의 과정에서 미·영과 소련은 계속 충돌했다. 그때마다 미·영은 소련의 의사를 완전히 거부할 수 없었다. 그렇게 하려면 지금까지의 협조 관계를 파탄낼 수도 있는 군사력을 폴란드에 동원해야 했다. 하지만 유럽의 동부전선은 소련이 전적으로 감당하고 있었다. 결국 폴란드 문제를 풀어가는 종국적인 흐름은 소련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1945년 6월28일 공산주의 계열이 사실상 주도권을 장악한 폴란드 임시정부가 바르샤바에서 출범했다. 미·영은 얄타 협정을 이행하겠다는 보증을 받고 7월5일 새로운 임시정부를 승인하고 런던 망명정부의 승인을 취소했다.
이렇듯 충칭의 독립운동가들은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또 다른 임시정부가 다른 곳에 생길 가능성이 충분한 현실을 파노라마 장면처럼 목격했다. 그들은 지금까지보다 훨씬 더 큰 연합전선을 형성하지 않으면 일본이 패전했을 때 폴란드 망명정부처럼 자신들에게도 정치적 미래가 없을 수 있다는 우려감을 품게 되었다.
새로운 충격파는 특정 개개인의 관심을 넘어 조직 차원의 대응으로 나타났다. 2월8일 창당된 신한민주당은 임시정부의 여당인 한국독립당과 야당인 조선민족혁명당을 비판하며 제3세력을 표방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였다. 창당선언문은 “오늘날 런던에 있는 폴란드 망명정부에 닥친 사건은 충칭에 있는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내일 운명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망명정부의 운명을 따르지 않으려면, 어떤 확실한 성취와 진정한 민주적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시했다. 선언문이 말하는 확실한 성취란 연합군과 보조를 맞추어 무장조직을 강화하고 무장봉기와 게릴라전을 벌여 성과를 거둔다는 뜻이다. 또 진정한 민주적 기반이란 독립운동자대표대회를 열어 임시정부와 임시의정원을 확대 개편하는 사업을 가리킨다.
4월에 열린 임시의정원 제38차 회의 때도 손두환 의원은, 폴란드도 당했는데 우리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이 있느냐고 반문하면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첫 번째 국가로 소련을 지목했다. 그는 만약 이리 되면 소련이 자기 영토 안에 있는 정권을 도우려 하고, 미국과 중국도 자기 지역에 있는 정부를 지지하려 할 것이라 내다봤다. “그러면 그 영향이 조선에 미쳐 우리 조선 사람끼리 잔혹한 싸움이 일어날” 것이라며 내전을 예측했고, 세 강대국 모두 조선 문제에 간섭하게 된다고 전망했다. 그는 이러한 상황에 이르면 결국 조선이 즉각 독립하지 못하는 “위임통치의 위험성”까지 있다고 보았다.
충칭의 독립운동가들은 미주, 화북 등지의 독립운동가까지 모이는 대표대회를 열어 독립운동의 민주적 기초를 확장해야 친소 성향의 또 다른 임시정부를 등장하지 못하게 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확대 개편해 그 지위를 높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래서 임시의정원은 독립운동자대표대회 소집을 긴급 안건으로 채택했다. 각 정당의 대표들은 대한민국임시정부에서 대표대회 소집을 담당하기로 합의했다.
그렇지만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독립운동자대표대회를 열기 위해 특별한 노력을 기울였다는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1945년 7월20일자 ‘독립신문’ 기사는 여전히 ‘적당한 시기’를 말했다. 일본 본토에서의 첫 전투인 오키나와 전투에서 미군이 승리한 지 한 달가량 되는 때인데도 임시정부는 여전히 시기를 저울질했다. 충칭 독립운동 세력의 실행력과 결집력의 한계다.
폴란드 문제를 대하는 태도는 처음부터 배제의 원리를 내재한 반공의 시선으로 사태에 접근하고, 4대 연합국의 관계를 협력보다는 분열된 진영 감각으로 접근하는 데서도 확인된다. 그래서 루블린에서 결성된 폴란드 민족해방위원회를 빗대 대한민국 임시정부와 구별되는 다른 정당과 단체를 공산주의 선동가와 용공주의자 그룹으로 몰아붙일 때 ‘한국판 루블린위원회’라는 딱지를 자연스럽게 붙였다. 또 런던의 폴란드 망명정부가 동부지역 국경선에 대한 소련 측의 요구를 반대하자, 처칠이 그들을 향해 “동맹국들의 합의를 깨는 것은 범죄적 시도라고” 했던 말이 들릴 리 없었다. 스탈린이 전후 영국의 그리스 점령 정책에 간섭하지 않고 정보를 원한다고 몸을 낮추는 대신 폴란드에서의 우선권을 강력하게 밀어붙일 때도 처칠과 루스벨트가 끝내 거부하지 못한 정치 역학을 이해할 수 없었다.
이렇듯 8·15 이전에 내장된 시선과 익숙해진 태도를 극복하고 1945년 12월 한반도 신탁통치 문제가 알려졌을 때 그것의 무게와 위험성을 대전제한 지도자는 몇명일까. 당대를 이끌던 김구 김규식 김두봉 김원봉 김일성 박헌영 안재홍 여운형 이승만, 그 누구도 다 같이 만나 대화하고 상의해 보자고 제안하지 않았다. 마치 속도전하듯이 이념으로 갈라지고 진영에 숨어들어갔다. 이에 한반도는 ‘지정학의 힘’이 작동하는 공간에서 ‘지정학의 족쇄’ 공간으로 다시 한번 갇혀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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