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시, 시의 세계]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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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이드리언 리치의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은 가부장적 질서와는 다른 여성의 힘과 사랑이 어디서 나오는지 탐구하면서 여성의 역사를 재구성한 시집이다. 시집 첫머리에 있는 ‘힘’에서 ‘나’는 마리 퀴리의 전기를 읽으며 그녀의 성취와 고통을 사유한다. 마리 퀴리는 여성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과학자였지만, 방사선 연구를 위해 원석에서 정제해낸 ‘라듐’에 피폭되어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백내장으로 눈이 어두워지고 피부는 괴사되어 시험관이나 연필을 쥘 수도 없었지만, 그녀는 사망할 때까지 자신의 질병이 방사능 때문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았다. 여성이 새로운 길을 개척하기 위해서는 얼마나 치명적 위험을 지불해야 하는가. 리치는 이 역설에 주목하면서, 마리 퀴리의 생애와 죽음을 굴삭기가 역사의 대지에서 발굴한 ‘호박 병 하나’에 비유한다. 그 백 년 된 황갈색 병 속에는 후대의 여성들이 “이 땅에서 살기 위해 필요한 물약”이 들어 있다. 마리 퀴리가 새롭게 써내려간 과학의 역사와 여성의 역사를 통해 ‘나’의 언어는 ‘우리’의 공통 언어에 점점 다가간다. 그리고 “자신의 상처가 자신의 힘과 똑같은 근원으로부터 왔음을” 깨닫게 된다. 에이드리언 리치 역시 미국의 가부장제에 온몸으로 맞서 싸운 시인이자 전사였다. 단단한 호박 병 같은 리치의 시들에는 공통 언어를 향한 꿈이 가득 담겨 있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29일 “이재명 대통령 연임은 우리나라 헌법 체계가 허용하지 않고, 국민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은 국민 선택의 문제’라는 조정식 국회의장 발언으로 파문이 커지자 청와대가 하루 뒤 선을 그은 것이다. 조 의장도 당일 밤 “개헌 논의에 현직 대통령 연임은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강 실장은 “이 대통령이 대선 전 후보 신분일 때부터 말씀하셨고, 지금도 하는 말을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연임은 불가능하다는 게 이 대통령 생각이라는 것이다. 남미를 순방 중인 이 대통령과 상의하고 한 발언일 테니 이 대통령 입장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로써 이 대통령 연임론은 공론장에서 설 자리가 없어졌다. 진작 그랬어야 한다. 이 문제가 더는 재론되지 않도록 이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입장을 밝힐 필요도 있다고 본다.
조 의장의 ‘연임 개헌’ 발언과 당·청의 사후 대응은 여권의 총체적 난맥상을 보여주었다. 이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론’을 정계개편론으로 치환한 유시민 작가의 주장으로 이 대통령의 궁극적 의도가 연임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진 터다. 이 대통령 정무특보 출신 국회의장이라면 발언에 신중을 기했어야 마땅하다. “현직 대통령 연임은 불가”라는 전임 우원식 국회의장의 모범답안도 있다.
그런데도 조 의장은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은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이라고 했다. 작정하고 이 대통령 연임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는 게 당연하다. 이 대통령 의중을 담은 발언으로 비칠 소지도 다분하다. 조 의장은 개헌을 주제로 한 기자간담회에서 문제의 발언을 했다. 국회의장이 개헌하자면서 개헌 논의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청와대나 조 의장이 곧장 선을 그었더라면 ‘연임 개헌’ 발언은 해프닝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조 의장이 해명할 일’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조 의장은 몇시간 뒤 공보수석을 통해 두루뭉술하게 해명해 논란만 키웠다. 여당 당권 주자들 중 누구도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은 안 된다’고 선을 긋지 않았다. 당·청의 정무 기능이 단단히 고장났거나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조 의장이 문제의 발언을 한 날 한국 증시는 대폭락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민심 반응도 흉흉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운영을 책임진 여권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될 이 대통령 연임 문제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여당 전당대회도 친명·반명 편가르기만 있을 뿐 민생 의제는 찾기 어렵다. 여권의 관심사와 국민의 관심사가 다른 것이다. 이번 ‘연임 개헌’ 파문도 그러한 괴리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당·청은 이번 사달을 계기로 이 대통령 연임 논란을 깨끗이 정리하고 국정운영의 기본자세부터 일신해야 한다.
지난해 개정한 방송 관련법에 따라 공영방송사 거버넌스 변화가 가속하고 있다. 13명 정원인 방송문화진흥회 및 EBS 이사회는 국민의힘 몫 이사 2인씩을 제외하고 각각 11명이 임명된 상태다. 방문진은 곧 새 MBC 사장 선임 절차를 시작한다. 15명 정원인 KBS 이사회는 임직원과 시청자위원회 추천 몫 5명의 선임 절차가 지연되고, 국민의힘도 추천을 미뤄 현 재적은 8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KBS 이사회는 지난주 임시 이사장을 호선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도 신규 이사들이 정원의 과반수가 임명된 후 이사회를 운영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번엔 공영방송을 제대로 정상화해야 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KBS와 MBC의 일부 이사 교체 및 사장 해임 등을 통해 거버넌스를 바꿨다. 당시 정상화의 화두는 이명박, 박근혜 시절 행해진 방송 탄압과 퇴행적 공영방송 운영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그러나 2022년에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후 권력의 방송 장악 시도가 재연됐다. 지난해 탄핵 및 정권교체 후 다시 시작된 이번 정상화는 경영진 교체로 끝낸 과거와 달리 방송법 개정을 통한 정치적 후견주의를 타파하는 제도화가 핵심이다. 이제 운영 과정에서 법 정신을 살리고 그 실천을 관행으로 만드는 과제가 남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관련 법을 다시 일부 개정해야 한다.
독립성 보장 외에 또 다른 과제가 있다. 그것은 지속 가능한 공영방송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2017년 이후의 정상화 드라이브 때도 지상파 방송 중심의 공영방송은 이미 쇠락의 길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독립성 회복에만 집중한 채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처가 소홀했다. 시청률은 계속 떨어지고, 제작비는 올라 적자가 만성화하기 시작했다. 새 경영진마다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며 제작비를 늘리다가, 적자가 불어나기 시작하면 급하게 비상경영계획이란 이름으로 제작비를 줄이는 패턴을 반복했다.
이제는 긴축으로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비정상 상황이 고착했다. KBS는 제작비를 줄였지만 적자 폭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제작 자회사인 몬스터유니온 또한 2025년에 대규모 적자를 냈다. MBC는 시청 점유율 상승과 높은 시민 신뢰도라는 우수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2025년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역 계열 방송사 중 일부는 자본잠식이 임박한 상태다. 상대적으로 사업 규모가 작은 EBS만이 2025년에 비용 절감 등으로 적자를 피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적 재원은 37%에 불과하다. 전체 수입의 25%에 해당하는 교재 판매에 더해 각종 부대사업으로 나머지 비용을 충당하는 불안정한 재원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영향력 있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제작비를 줄여가는 공영방송은 왜 존재해야 할까!
제도가 잘 변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신제도주의 이론은, 기존 질서 안에서 이해관계가 평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만 급격한 정치·경제 질서 변화가 일어나는 ‘중대 국면’에서만 제도개혁의 기회가 찾아온다. 한국의 공영방송 시스템은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펼쳐진 중대 국면을 놓쳤다. 이번 기회에는 정부, 국회, 방송사가 함께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고 실천해야 한다. 방치하면 끝은 뻔하다.
강훈식 대통령비서실장이 29일 “이재명 대통령 연임은 우리나라 헌법 체계가 허용하지 않고, 국민도 용인하지 않을 것이며,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은 국민 선택의 문제’라는 조정식 국회의장 발언으로 파문이 커지자 청와대가 하루 뒤 선을 그은 것이다. 조 의장도 당일 밤 “개헌 논의에 현직 대통령 연임은 대상이 아니다”라고 했다.
강 실장은 “이 대통령이 대선 전 후보 신분일 때부터 말씀하셨고, 지금도 하는 말을 정리한 것”이라고 했다. 자신의 연임은 불가능하다는 게 이 대통령 생각이라는 것이다. 남미를 순방 중인 이 대통령과 상의하고 한 발언일 테니 이 대통령 입장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이로써 이 대통령 연임론은 공론장에서 설 자리가 없어졌다. 진작 그랬어야 한다. 이 문제가 더는 재론되지 않도록 이 대통령이 직접 국민에게 입장을 밝힐 필요도 있다고 본다.
조 의장의 ‘연임 개헌’ 발언과 당·청의 사후 대응은 여권의 총체적 난맥상을 보여주었다. 이 대통령의 ‘구조적 다수론’을 정계개편론으로 치환한 유시민 작가의 주장으로 이 대통령의 궁극적 의도가 연임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진 터다. 이 대통령 정무특보 출신 국회의장이라면 발언에 신중을 기했어야 마땅하다. “현직 대통령 연임은 불가”라는 전임 우원식 국회의장의 모범답안도 있다.
그런데도 조 의장은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은 주권자인 국민의 선택’이라고 했다. 작정하고 이 대통령 연임 가능성을 열어둔 것으로 보는 게 당연하다. 이 대통령 의중을 담은 발언으로 비칠 소지도 다분하다. 조 의장은 개헌을 주제로 한 기자간담회에서 문제의 발언을 했다. 국회의장이 개헌하자면서 개헌 논의에 찬물을 끼얹은 것이다.
청와대나 조 의장이 곧장 선을 그었더라면 ‘연임 개헌’ 발언은 해프닝으로 끝났을 것이다. 그러나 청와대는 ‘조 의장이 해명할 일’이라는 식의 태도를 보였다. 조 의장은 몇시간 뒤 공보수석을 통해 두루뭉술하게 해명해 논란만 키웠다. 여당 당권 주자들 중 누구도 ‘현직 대통령 연임 개헌은 안 된다’고 선을 긋지 않았다. 당·청의 정무 기능이 단단히 고장났거나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조 의장이 문제의 발언을 한 날 한국 증시는 대폭락했다. 부동산 문제에 대한 민심 반응도 흉흉하다. 이런 상황에서 국정운영을 책임진 여권이 될 수도 없고, 되어서도 안 될 이 대통령 연임 문제로 평지풍파를 일으켰다. 여당 전당대회도 친명·반명 편가르기만 있을 뿐 민생 의제는 찾기 어렵다. 여권의 관심사와 국민의 관심사가 다른 것이다. 이번 ‘연임 개헌’ 파문도 그러한 괴리의 연장선에 있다고 본다. 당·청은 이번 사달을 계기로 이 대통령 연임 논란을 깨끗이 정리하고 국정운영의 기본자세부터 일신해야 한다.
지난해 개정한 방송 관련법에 따라 공영방송사 거버넌스 변화가 가속하고 있다. 13명 정원인 방송문화진흥회 및 EBS 이사회는 국민의힘 몫 이사 2인씩을 제외하고 각각 11명이 임명된 상태다. 방문진은 곧 새 MBC 사장 선임 절차를 시작한다. 15명 정원인 KBS 이사회는 임직원과 시청자위원회 추천 몫 5명의 선임 절차가 지연되고, 국민의힘도 추천을 미뤄 현 재적은 8명에 불과하다. 하지만 KBS 이사회는 지난주 임시 이사장을 호선했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도 신규 이사들이 정원의 과반수가 임명된 후 이사회를 운영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번엔 공영방송을 제대로 정상화해야 한다. 2017년 문재인 정부는 KBS와 MBC의 일부 이사 교체 및 사장 해임 등을 통해 거버넌스를 바꿨다. 당시 정상화의 화두는 이명박, 박근혜 시절 행해진 방송 탄압과 퇴행적 공영방송 운영을 바로잡는 일이었다. 그러나 2022년에 윤석열 정권이 들어선 후 권력의 방송 장악 시도가 재연됐다. 지난해 탄핵 및 정권교체 후 다시 시작된 이번 정상화는 경영진 교체로 끝낸 과거와 달리 방송법 개정을 통한 정치적 후견주의를 타파하는 제도화가 핵심이다. 이제 운영 과정에서 법 정신을 살리고 그 실천을 관행으로 만드는 과제가 남았다.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관련 법을 다시 일부 개정해야 한다.
독립성 보장 외에 또 다른 과제가 있다. 그것은 지속 가능한 공영방송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2017년 이후의 정상화 드라이브 때도 지상파 방송 중심의 공영방송은 이미 쇠락의 길을 가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독립성 회복에만 집중한 채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한 대처가 소홀했다. 시청률은 계속 떨어지고, 제작비는 올라 적자가 만성화하기 시작했다. 새 경영진마다 콘텐츠로 승부해야 한다며 제작비를 늘리다가, 적자가 불어나기 시작하면 급하게 비상경영계획이란 이름으로 제작비를 줄이는 패턴을 반복했다.
이제는 긴축으로도 적자를 면치 못하는 비정상 상황이 고착했다. KBS는 제작비를 줄였지만 적자 폭은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제작 자회사인 몬스터유니온 또한 2025년에 대규모 적자를 냈다. MBC는 시청 점유율 상승과 높은 시민 신뢰도라는 우수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2025년에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지역 계열 방송사 중 일부는 자본잠식이 임박한 상태다. 상대적으로 사업 규모가 작은 EBS만이 2025년에 비용 절감 등으로 적자를 피했다. 그러나 여전히 공적 재원은 37%에 불과하다. 전체 수입의 25%에 해당하는 교재 판매에 더해 각종 부대사업으로 나머지 비용을 충당하는 불안정한 재원 구조가 지속되고 있다. 영향력 있는 좋은 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할 정도로 제작비를 줄여가는 공영방송은 왜 존재해야 할까!
제도가 잘 변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는 신제도주의 이론은, 기존 질서 안에서 이해관계가 평형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다만 급격한 정치·경제 질서 변화가 일어나는 ‘중대 국면’에서만 제도개혁의 기회가 찾아온다. 한국의 공영방송 시스템은 2017년 박근혜 탄핵 이후 펼쳐진 중대 국면을 놓쳤다. 이번 기회에는 정부, 국회, 방송사가 함께 공영방송의 독립성과 지속 가능성을 동시에 확보하는 새로운 구조를 설계하고 실천해야 한다. 방치하면 끝은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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