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망머니 [책과 삶]죽은 척하는 너구리? 우리 땅 야생동물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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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망머니 왜 너구리는 맹수에게 공격받은 직후 죽은 척을 할까. 고라니는 언제부터 ‘고라니’였을까. 동물을 오래 들여다본 끝에 읽어낸 것은 결국 인간이었다. 신간 <동물의 향기, 인간의 풍경>은 포유류 생태 현장연구자인 저자가 30여년간 한국의 숲과 들을 누비며 기록한 야생동물 이야기이자, 동물을 통해 인간 사회를 성찰하는 생태인문학이다.
국내에 출간된 동물 교양서 상당수가 해외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것과 달리, 책은 지리산과 설악산, 비무장지대(DMZ) 등 우리 땅에서 직접 관찰하고 축적한 연구를 토대로 한다. 토끼와 너구리, 삵, 고양이, 늑대, 고라니, 산양, 두루미 등 한국인과 오랫동안 공존해온 동물들의 생태를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동시에 역사와 언어, 민속, 문화사를 촘촘히 엮어냈다.
저자는 가야시대 유물 속 동물이 고양이가 아니라 삵일 가능성을 제시하고, 오늘날의 ‘고라니’가 과거에는 전혀 다른 동물을 가리켰다는 사실을 추적한다. 늑대와 호랑이의 경쟁사, DMZ 생태계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로드킬, 개발과 보존의 갈등, 길고양이와 캣맘 논쟁 등 민감한 사안도 전문적이고 차분한 시선으로 되짚는다.
진화생물학과 뇌과학을 바탕으로 사랑, 질투, 리더십, 행복 등 인간의 마음도 들여다본다. 여성이 안전에 민감한 이유, 권력을 성적 매력으로 착각하는 남성의 심리, 연인 사이의 구속 본능도 ‘진화가 남긴 본능’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과거에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본능이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진화의 덫이 되었다는 지적은 인간이 본능을 어떻게 다루며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동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결국 인간을 이해하는 길이다. 저자의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4일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새로운 형사사법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새로 출범하는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수사 관련 협의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경찰 내 주요 비위자는 수사 부서에 근무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는 등의 통제 방안도 제시했다.
유 직무대행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주재한 전국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많은 국민들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국 경찰 지휘부 회의는 이날 오전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형소법 개정안이 심의·의결된 직후 열렸다. 형소법 개정으로 오는 10월2일부터 검사의 보완수사를 비롯한 모든 수사권이 폐지되고 수사·기소가 완전히 분리되는 데 따른 경찰의 준비·대응 방안 등이 논의됐다.
경찰은 공소청과 긴밀히 협의하며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유 직무대행은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는 신속하고 책임감 있게 이행해 부실·지연 수사를 차단하겠다”며 “공소시효가 임박한 모든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 3개월 전부터 공소청과 필수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공소시효 임박 사건에 한해 검찰의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경찰은 새로 출범하는 수사기관인 중수청과의 협력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유 직무대행은 이와 관련해 “경찰의 모든 수사 과정을 기록에 남기고 단계별 사건 통지를 내실화해 국민께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수사기관 간 관할 논란 등으로 사건이 표류하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경찰 수사 권한 강화에 따른 내·외부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조직 내 주요 비리자는 수사 부서에서 근무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유 직무대행은 “(외부의) 사건 문의를 금지하고 사건 청탁은 직무 고발을 원칙으로 강력히 조치해 전관예우에 대한 우려도 확실히 끊어내겠다”며 “사건 암장과 왜곡, 수사권 남용이 경찰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관의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수사 인권·감찰조사기구 신설 등도 재확인했다. 유 직무대행은 “경찰수사개혁위원회 권고 내용까지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라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일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범죄 피해자 보호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범죄 피해자가 경찰 수사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받고 직접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다. 유 직무대행은 “스토킹·아동학대 등 사회적 약자 대상 사건 처리 전반의 완결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관련 수사 인력과 예산도 보강하겠다고 했다.
유 직무대행은 “형사사법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주말의 취향’은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운 문화 현장의 소식들을 풀어서 전합니다. 마음은 가볍게, 생각은 깊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서울박스’ 한가운데 검은 파도가 솟아 있습니다. 높이 8m가 넘는 화면이 한껏 치솟았다가 끝부분이 관람객 쪽으로 쏟아져 내리듯 휘어집니다. 매끈한 검은 화면 위로 우주에 떠 있는 듯한 바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주위로 낙서처럼 보이는 선과 글자들이 몰려듭니다.
HAVE, MANY, DUMB, FIGHTS, AGAINST, ROCK.
여섯 단어와 고전 만화에서 본 듯한 ‘모션 라인’이 달려들어 바위를 때립니다. 선과 글자들은 끊임없이 부딪히고, 다시 덤빕니다. 화면 밖도 소란합니다. 화면 속 이미지가 영상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벽을 타고 오르고, 유리 벽면을 가로지릅니다. 바닥에는 무언가 철푸덕 부딪친 듯한 검은 형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영상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단어와 선 사이를 걸어 다니게 됩니다. 애니메이션 속으로 들어온 듯한 공간입니다. 그런데 바위에 계속 달려드는 선들을 보고 있으면, 귀여우면서도 어쩐지 짠하고 뭉클한 건 왜일까요.
국립현대미술관이 31일부터 선보이는 ‘MMCA×LG OLED 시리즈 2026: 김 크리스틴 선-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은 영상과 벽화, 바닥 드로잉, 사운드가 서울박스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묶습니다.
‘MMCA×LG OLED 시리즈’는 국립현대미술관과 LG전자가 지난해 시작한 협력 프로젝트로, 해마다 작가 한 명을 선정해 서울박스를 위한 장소특정적 신작을 제작합니다. 올해는 55인치 OLED 디스플레이 72대를 연결해 가로 5.1m, 세로 8.4m의 곡면 화면을 만들었습니다.
참여 작가인 김 크리스틴 선(Christine Sun Kim)은 미국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입니다. 지난해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영국 미술 전문지 ‘아트리뷰’가 매년 집계하는 ‘파워 100’에서 34위에 선정됐습니다.
그를 흔히 ‘소리를 시각화하는 농인 작가’라고 소개하지만, 그의 작업은 농인 커뮤니티의 경험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미국 수어(ASL)와 악보, 만화적 기호 등을 결합해 언어와 소리가 권력과 제도, 교육과 미디어 속에서 생산되고 전달되는 방식을 드러냅니다. 이를 통해 “누가 발언할 수 있으며 누가 배제되는가”를 묻고, 언어와 번역, 차이와 이해, 접근성과 공존이라는 보편적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지난 30일 기자간담회는 여러 언어를 통과해 진행됐습니다. 작가의 미국 수어는 수어 통역사를 통해 영어로 옮겨진 뒤, 다시 한·영 통역사를 거쳐 한국어로 전달됐습니다. 질문은 반대 방향으로 건너갔습니다. 김 작가는 자신의 말이 여러 통역자를 거쳐 정확히 전달될 것이라는 ‘온전한 신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간담회 자체가 그의 작업이 다루는 소통과 번역의 구조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작품의 영문 제목 ‘Have Many Dumb Fights Against Rock’은 문법적으로 매끄러운 문장도, 일상적인 관용구도 아닙니다. ‘바위와 수없이 많은 어리석은 싸움을 벌인다’거나 ‘바위를 상대로 많은 어리석은 싸움을 하다’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한국어 제목인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은 이를 직역하기보다 작품의 위트와 열린 의미를 살려 옮긴 것입니다. 여기서 바위는 움직이지 않는 타인일 수도, 굳어진 제도와 규범, 편견과 사고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확신에 빠진 ‘나’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제목의 여섯 단어를 나타내는 미국 수어 동작을 고전 만화의 모션 라인과 결합했습니다. ‘많다’의 손동작은 여러 갈래로 퍼지는 선으로, ‘어리석다’의 동작은 머리를 때리는 듯한 기호로 바뀝니다. 두 팔이 부딪치는 ‘싸우다’와 손바닥을 치는 ‘맞서다’의 움직임도 화면 속 선이 됩니다. 작가는 벽과 바닥의 드로잉을 ‘악보’에, 화면 속 애니메이션을 이를 연주하는 ‘공연’에 비유했습니다. 수어를 모르는 관람객도 선이 향하는 방향과 충돌의 리듬을 몸으로 따라가게 됩니다.
흑백으로 이뤄진 화면에도 작가의 경험이 배어 있습니다. 김 작가는 “말로 하는 언어가 우위에 있는 세계에서 수어를 사용하며 사는 제 작품의 기반에는 공포가 있다”며 “저를 위해 설계된 세계가 아니기에 긴장과 소통의 오류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 오해 없이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욕구가 흑과 백으로 명료하게 구분되는 드로잉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김 작가가 바라보는 오늘날의 세계는 온갖 싸움으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권력과 소유권, 토지와 법규를 놓고 다투고, 정치적 논쟁과 온라인의 말싸움에서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입장을 되풀이합니다. 그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주도권을 가지려고 끊임없이 싸우고 논쟁하지만, 마치 완고한 바위와 싸우는 듯 아무런 결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작품이 갈등을 없애고 하나의 합의에 도달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이 보여주는 소통은 충돌하고 오해하고 다시 번역하면서 관계를 조율해 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무모한 싸움’은 소모적인 대립인 동시에, 다른 언어와 감각을 지닌 존재들이 공존할 가능성이 생겨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영상이 반복되는 동안 완고한 바위는 그 자리에 있고, 선과 단어들은 부딪혀 튕겨 나갑니다. 하지만 주변으로 밀려났던 언어와 몸짓이 자기 주장을 하는 순간, 변화는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릅니다. 이 무모한 싸움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국내에 출간된 동물 교양서 상당수가 해외 연구를 바탕으로 하는 것과 달리, 책은 지리산과 설악산, 비무장지대(DMZ) 등 우리 땅에서 직접 관찰하고 축적한 연구를 토대로 한다. 토끼와 너구리, 삵, 고양이, 늑대, 고라니, 산양, 두루미 등 한국인과 오랫동안 공존해온 동물들의 생태를 과학적으로 풀어내는 동시에 역사와 언어, 민속, 문화사를 촘촘히 엮어냈다.
저자는 가야시대 유물 속 동물이 고양이가 아니라 삵일 가능성을 제시하고, 오늘날의 ‘고라니’가 과거에는 전혀 다른 동물을 가리켰다는 사실을 추적한다. 늑대와 호랑이의 경쟁사, DMZ 생태계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게 펼쳐진다. 로드킬, 개발과 보존의 갈등, 길고양이와 캣맘 논쟁 등 민감한 사안도 전문적이고 차분한 시선으로 되짚는다.
진화생물학과 뇌과학을 바탕으로 사랑, 질투, 리더십, 행복 등 인간의 마음도 들여다본다. 여성이 안전에 민감한 이유, 권력을 성적 매력으로 착각하는 남성의 심리, 연인 사이의 구속 본능도 ‘진화가 남긴 본능’이라는 관점에서 설명할 수 있다. 과거에는 생존과 번식에 유리했던 본능이 문명화된 현대 사회에서는 진화의 덫이 되었다는 지적은 인간이 본능을 어떻게 다루며 살아가야 하는지 생각하게 한다. 동물을 제대로 이해하는 일은 결국 인간을 이해하는 길이다. 저자의 말처럼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사랑할 수 있다”.
유재성 경찰청장 직무대행이 4일 검사의 수사권을 전면 폐지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하자 “새로운 형사사법체계가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도록 조직의 명운을 걸고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새로 출범하는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수사 관련 협의를 강화하겠다고 했다. 경찰 내 주요 비위자는 수사 부서에 근무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는 등의 통제 방안도 제시했다.
유 직무대행은 이날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주재한 전국 경찰 지휘부 화상회의에서 “많은 국민들께서 경찰 수사의 공정성과 신속성, 범죄 피해자에 대한 실질적인 보호, 경찰의 비대화 등에 대해 걱정하고 계신 것을 잘 알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전국 경찰 지휘부 회의는 이날 오전 이재명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형소법 개정안이 심의·의결된 직후 열렸다. 형소법 개정으로 오는 10월2일부터 검사의 보완수사를 비롯한 모든 수사권이 폐지되고 수사·기소가 완전히 분리되는 데 따른 경찰의 준비·대응 방안 등이 논의됐다.
경찰은 공소청과 긴밀히 협의하며 수사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유 직무대행은 “공소청 검사의 보완수사 요구는 신속하고 책임감 있게 이행해 부실·지연 수사를 차단하겠다”며 “공소시효가 임박한 모든 사건은 (공소시효 만료) 3개월 전부터 공소청과 필수적으로 협의하겠다”고 말했다. 앞서 이 대통령은 공소시효 임박 사건에 한해 검찰의 보완수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힌 바 있다.
경찰은 새로 출범하는 수사기관인 중수청과의 협력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유 직무대행은 이와 관련해 “경찰의 모든 수사 과정을 기록에 남기고 단계별 사건 통지를 내실화해 국민께 투명하게 공개하겠다”고 말했다. 수사기관 간 관할 논란 등으로 사건이 표류하지 않게 하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경찰 수사 권한 강화에 따른 내·외부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조직 내 주요 비리자는 수사 부서에서 근무하지 못하도록 제도화하겠다고 했다. 유 직무대행은 “(외부의) 사건 문의를 금지하고 사건 청탁은 직무 고발을 원칙으로 강력히 조치해 전관예우에 대한 우려도 확실히 끊어내겠다”며 “사건 암장과 왜곡, 수사권 남용이 경찰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경찰관의 배우자 및 존·비속 상피제와 경찰수사 인권·감찰조사기구 신설 등도 재확인했다. 유 직무대행은 “경찰수사개혁위원회 권고 내용까지 촘촘한 통제 방안을 마련하겠다”라며 “견제받지 않는 권력은 부패하기 마련이고 경찰도 예외일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 보완수사권 폐지로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범죄 피해자 보호도 강화하겠다고 했다. 범죄 피해자가 경찰 수사에 대해 충분한 정보를 받고 직접 의견을 개진할 수 있도록 제도화한다. 유 직무대행은 “스토킹·아동학대 등 사회적 약자 대상 사건 처리 전반의 완결성을 높이겠다”고 말했다. 경찰은 관련 수사 인력과 예산도 보강하겠다고 했다.
유 직무대행은 “형사사법체계가 국민의 신뢰 속에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분골쇄신의 각오로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주말의 취향’은 지면에 다 담기 어려운 문화 현장의 소식들을 풀어서 전합니다. 마음은 가볍게, 생각은 깊이 할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합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서울박스’ 한가운데 검은 파도가 솟아 있습니다. 높이 8m가 넘는 화면이 한껏 치솟았다가 끝부분이 관람객 쪽으로 쏟아져 내리듯 휘어집니다. 매끈한 검은 화면 위로 우주에 떠 있는 듯한 바위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 주위로 낙서처럼 보이는 선과 글자들이 몰려듭니다.
HAVE, MANY, DUMB, FIGHTS, AGAINST, ROCK.
여섯 단어와 고전 만화에서 본 듯한 ‘모션 라인’이 달려들어 바위를 때립니다. 선과 글자들은 끊임없이 부딪히고, 다시 덤빕니다. 화면 밖도 소란합니다. 화면 속 이미지가 영상에서 빠져나온 것처럼 벽을 타고 오르고, 유리 벽면을 가로지릅니다. 바닥에는 무언가 철푸덕 부딪친 듯한 검은 형상이 펼쳐져 있습니다. 관람객은 작품 앞에서 영상을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단어와 선 사이를 걸어 다니게 됩니다. 애니메이션 속으로 들어온 듯한 공간입니다. 그런데 바위에 계속 달려드는 선들을 보고 있으면, 귀여우면서도 어쩐지 짠하고 뭉클한 건 왜일까요.
국립현대미술관이 31일부터 선보이는 ‘MMCA×LG OLED 시리즈 2026: 김 크리스틴 선-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은 영상과 벽화, 바닥 드로잉, 사운드가 서울박스 전체를 하나의 작품으로 묶습니다.
‘MMCA×LG OLED 시리즈’는 국립현대미술관과 LG전자가 지난해 시작한 협력 프로젝트로, 해마다 작가 한 명을 선정해 서울박스를 위한 장소특정적 신작을 제작합니다. 올해는 55인치 OLED 디스플레이 72대를 연결해 가로 5.1m, 세로 8.4m의 곡면 화면을 만들었습니다.
참여 작가인 김 크리스틴 선(Christine Sun Kim)은 미국에서 태어나 독일 베를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한국계 미국인 작가입니다. 지난해 뉴욕 휘트니미술관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영국 미술 전문지 ‘아트리뷰’가 매년 집계하는 ‘파워 100’에서 34위에 선정됐습니다.
그를 흔히 ‘소리를 시각화하는 농인 작가’라고 소개하지만, 그의 작업은 농인 커뮤니티의 경험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습니다. 미국 수어(ASL)와 악보, 만화적 기호 등을 결합해 언어와 소리가 권력과 제도, 교육과 미디어 속에서 생산되고 전달되는 방식을 드러냅니다. 이를 통해 “누가 발언할 수 있으며 누가 배제되는가”를 묻고, 언어와 번역, 차이와 이해, 접근성과 공존이라는 보편적 질문으로 나아갑니다.
지난 30일 기자간담회는 여러 언어를 통과해 진행됐습니다. 작가의 미국 수어는 수어 통역사를 통해 영어로 옮겨진 뒤, 다시 한·영 통역사를 거쳐 한국어로 전달됐습니다. 질문은 반대 방향으로 건너갔습니다. 김 작가는 자신의 말이 여러 통역자를 거쳐 정확히 전달될 것이라는 ‘온전한 신뢰’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간담회 자체가 그의 작업이 다루는 소통과 번역의 구조를 보여주는 듯했습니다.
작품의 영문 제목 ‘Have Many Dumb Fights Against Rock’은 문법적으로 매끄러운 문장도, 일상적인 관용구도 아닙니다. ‘바위와 수없이 많은 어리석은 싸움을 벌인다’거나 ‘바위를 상대로 많은 어리석은 싸움을 하다’ 등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한국어 제목인 ‘완고한 바위, 무모한 싸움들’은 이를 직역하기보다 작품의 위트와 열린 의미를 살려 옮긴 것입니다. 여기서 바위는 움직이지 않는 타인일 수도, 굳어진 제도와 규범, 편견과 사고방식일 수도 있습니다. 자기 확신에 빠진 ‘나’일 수도 있습니다.
작가는 제목의 여섯 단어를 나타내는 미국 수어 동작을 고전 만화의 모션 라인과 결합했습니다. ‘많다’의 손동작은 여러 갈래로 퍼지는 선으로, ‘어리석다’의 동작은 머리를 때리는 듯한 기호로 바뀝니다. 두 팔이 부딪치는 ‘싸우다’와 손바닥을 치는 ‘맞서다’의 움직임도 화면 속 선이 됩니다. 작가는 벽과 바닥의 드로잉을 ‘악보’에, 화면 속 애니메이션을 이를 연주하는 ‘공연’에 비유했습니다. 수어를 모르는 관람객도 선이 향하는 방향과 충돌의 리듬을 몸으로 따라가게 됩니다.
흑백으로 이뤄진 화면에도 작가의 경험이 배어 있습니다. 김 작가는 “말로 하는 언어가 우위에 있는 세계에서 수어를 사용하며 사는 제 작품의 기반에는 공포가 있다”며 “저를 위해 설계된 세계가 아니기에 긴장과 소통의 오류가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 오해 없이 메시지를 전하려 했던 욕구가 흑과 백으로 명료하게 구분되는 드로잉으로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김 작가가 바라보는 오늘날의 세계는 온갖 싸움으로 가득합니다. 사람들은 권력과 소유권, 토지와 법규를 놓고 다투고, 정치적 논쟁과 온라인의 말싸움에서는 서로를 이해하기보다 자신의 입장을 되풀이합니다. 그는 “사람들은 무엇인가를 소유하고 주도권을 가지려고 끊임없이 싸우고 논쟁하지만, 마치 완고한 바위와 싸우는 듯 아무런 결론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고 작품이 갈등을 없애고 하나의 합의에 도달하자고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김이 보여주는 소통은 충돌하고 오해하고 다시 번역하면서 관계를 조율해 가는 과정에 가깝습니다. ‘무모한 싸움’은 소모적인 대립인 동시에, 다른 언어와 감각을 지닌 존재들이 공존할 가능성이 생겨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영상이 반복되는 동안 완고한 바위는 그 자리에 있고, 선과 단어들은 부딪혀 튕겨 나갑니다. 하지만 주변으로 밀려났던 언어와 몸짓이 자기 주장을 하는 순간, 변화는 이미 시작됐는지도 모릅니다. 이 무모한 싸움이 뭉클하게 다가오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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