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 해제 당일 ‘정당화’ 논의? 종합특검, 한동훈에 출석 요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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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창영 2차 종합특별검사가 한동훈 무소속 의원에게 참고인 신분으로 출석하라고 통보한 것으로 6일 파악됐다. 종합특검은 12·3 불법계엄이 해제된 2024년 12월4일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한 의원이 ‘당·정부·대통령실(당정대) 회의’에 참석해 내란을 정당화하는 논리를 개발했다고 의심한다.
종합특검은 지난 5일 한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등에 ‘오는 12일 오전 10시 경기 과천시 특검 조사실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고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종합특검은 한 의원 측에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연락해 수차례 출석 일정을 조율하려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어 출석요구서를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4년 12월4일 새벽 국회 의결로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후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당정대 회의가 열렸다. 국민의힘 측에선 한 의원과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 나경원·김기현 의원, 정부에선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방기선 전 국무조정실장이 참석했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 홍철호 전 정무수석,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자리했다. 이후 오후 5시쯤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 의원, 한 전 총리, 추 전 원내대표가 만나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한 의원은 같은 날 저녁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기자들에게 “총리실에서 (당정대) 회의를 할 때 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윤 전 대통령 탈당 요구를) 전달드렸다”며 “계엄이 경고성일 수는 없다”고 사태를 비판했다.
종합특검은 그날 오후 7시에 열린 삼청동 안가 회동이 당정대 회의의 연장선이라고 의심한다. 안가 회동에는 당정대 회의에 참석했던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을 비롯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한정화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이 모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는 지난 6월 박 전 장관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면서 안가 회동이 윤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계엄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옹호하는 논리를 구축한 회의였다고 판시했다.
당정대 회의 참석자였던 방 전 실장은 6일 참고인 신분으로 종합특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종합특검은 당정대 회의와 대통령실 회동 등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파악해 참석자들의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저는 계엄 당일 여당 대표임에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계엄을 저지했다”며 “선거(6·3 지방선거) 기간에 아무 이유 없이 출국금지 시켜놓고 한 번도 부르지 못하더니, 이제 와서 보여주기식 언플(언론플레이)이나 하는 이재명 정권의 정치특검이 하려는 정치수사를 도와줄 생각은 없다”고 적었다. 종합특검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일상을 짓누른다. 점심 식사 후 늘 즐기던 산책도 중단했다. 나뭇잎은 한층 푸르러졌지만, 불에 덴 듯 마음은 시들하다.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며 잠시 마음을 고른다. 그러나 다시 우리 현실로 눈을 돌리면 숨이 막혀온다. 극단으로 치달아 서로를 악마화하기 바쁜 정치판의 막말, 부푼 기대와 절망이 교차하는 주식 시장 과열까지. 공론장은 차분한 토론의 장이 아니라 상대를 무너뜨리려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진영 논리에 갇힌 사람들의 진흙탕 싸움을 지켜보노라면 깊은 염오(厭惡)와 피로감만 남는다. 담론의 품격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끝없이 증폭되는 욕망의 잔여물뿐이다.
이런 세태를 볼 때마다 그리스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의 <자비로운 여신들>이 떠오른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한 뒤 벌어지는 재판을 다룬다. 아폴론은 아버지 원수를 갚은 행위가 정의라고 주장하고, 복수의 여신들은 혈육을 죽인 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맞선다. 양쪽 모두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 채 맞서는 이런 구조를 고대 그리스에선 ‘안티로기아’(Antilogia)라 불렀다. 어느 한쪽을 쉽게 악으로 단정할 수 없는, 정의와 정의가 충돌하는 비극적 상황이다. 신들조차 자신만의 정의를 독단적으로 강요할 수 없는 지점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이 난제를 신의 위엄이 아닌 인간의 ‘시민 법정’이라는 제도로 가져와 풀어낸다. 배심원 표결이 동수가 되자 아테나가 마지막 한 표를 던져 오레스테스를 석방한다. 그러나 그녀는 패배한 복수의 여신들을 내쫓지 않는다. 오히려 끈질기게 설득하여 그들을 도시를 지키는 ‘자비로운 여신들’로 받아들인다. 피의 복수는 법의 질서로 전환되고, 적대의 에너지는 공동체를 지키는 힘으로 승화된다. 정의란 어느 한쪽의 완승이 아니라, 충돌하는 정당성을 제도와 대화를 통해 감당해내는 공동체의 지혜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공론장에는 이러한 겸손한 통찰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만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다른 입장은 제거해야 할 악이라고 확신한다. 복잡한 현실을 견디기보다 단순한 구호와 적대의 언어가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모두가 정의를 외치지만, 정작 정의를 가능하게 하는 절제는 점점 사라진다. 말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다리가 아니라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
예수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 아니요 하라”고 가르쳤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라는 결연한 저항의 요구가 아니다. 예수는 하늘과 땅을 걸고 맹세하며 자신의 말을 과장하는 태도를 경계하셨다. 진실은 목소리의 크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군더더기를 걷어낸 담백한 언어에서 드러난다. 신뢰는 과장된 수사에서가 아니라 삶과 말이 일치하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불의를 보며 분노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분노가 정의는 아니다. 분노는 정의를 향한 출발점일 수 있지만, 절제를 잃는 순간 정의는 응징으로, 책임은 보복으로, 신념은 독선으로 변질되기 쉽다. 그래서 고대 철학은 정의를 늘 절제와 함께 이야기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 없다. 소통을 위해 자기 확신이라는 굳은 껍데기를 깰 내적 역량을 길러야 한다.
폭염보다 두려운 것은 타인을 향해 쏟아내는 분노의 열기다. 문명을 지탱해 온 건 맹목적 열정이 아니라 스스로를 경계하는 절제의 힘이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단단해질수록 정의가 들어설 공간은 좁아진다. 정의가 폭력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상대를 굴복시킬 정교한 논리나 뜨거운 신념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 진실을 담담하게 말하는 용기,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절제다. 서로의 정당성을 끝까지 경청하려는 인내와 자기 확신을 절제할 줄 아는 시민들 사이에서 비로소 정의는 공동체를 살리는 질서가 된다. 우리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종합특검은 지난 5일 한 의원의 자택과 국회 의원회관 사무실 등에 ‘오는 12일 오전 10시 경기 과천시 특검 조사실에 출석해 참고인 조사를 받으라’고 출석요구서를 보냈다. 종합특검은 한 의원 측에 전화와 문자메시지로 연락해 수차례 출석 일정을 조율하려 시도했으나 응답이 없어 출석요구서를 발송한 것으로 전해졌다.
2024년 12월4일 새벽 국회 의결로 비상계엄이 해제된 이후 같은 날 오후 2시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무총리 공관에서 당정대 회의가 열렸다. 국민의힘 측에선 한 의원과 추경호 당시 원내대표, 나경원·김기현 의원, 정부에선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박성재 전 법무부 장관, 방기선 전 국무조정실장이 참석했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전 대통령비서실장, 신원식 전 국가안보실장, 홍철호 전 정무수석, 김주현 전 민정수석이 자리했다. 이후 오후 5시쯤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과 한 의원, 한 전 총리, 추 전 원내대표가 만나 후속 대책을 논의했다.
한 의원은 같은 날 저녁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의원총회에 참석하며 기자들에게 “총리실에서 (당정대) 회의를 할 때 총리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윤 전 대통령 탈당 요구를) 전달드렸다”며 “계엄이 경고성일 수는 없다”고 사태를 비판했다.
종합특검은 그날 오후 7시에 열린 삼청동 안가 회동이 당정대 회의의 연장선이라고 의심한다. 안가 회동에는 당정대 회의에 참석했던 박 전 장관과 김 전 수석을 비롯해 이상민 전 행정안전부 장관, 이완규 전 법제처장, 한정화 전 대통령실 법률비서관이 모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합의33부(재판장 이진관)는 지난 6월 박 전 장관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하면서 안가 회동이 윤 전 대통령 지시에 따라 계엄의 정당성과 불가피성을 옹호하는 논리를 구축한 회의였다고 판시했다.
당정대 회의 참석자였던 방 전 실장은 6일 참고인 신분으로 종합특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종합특검은 당정대 회의와 대통령실 회동 등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파악해 참석자들의 사법처리 여부를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 의원은 이날 페이스북에 “저는 계엄 당일 여당 대표임에도 누구보다 앞장서서 계엄을 저지했다”며 “선거(6·3 지방선거) 기간에 아무 이유 없이 출국금지 시켜놓고 한 번도 부르지 못하더니, 이제 와서 보여주기식 언플(언론플레이)이나 하는 이재명 정권의 정치특검이 하려는 정치수사를 도와줄 생각은 없다”고 적었다. 종합특검의 출석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것이란 뜻으로 풀이된다.
푹푹 찌는 무더위가 일상을 짓누른다. 점심 식사 후 늘 즐기던 산책도 중단했다. 나뭇잎은 한층 푸르러졌지만, 불에 덴 듯 마음은 시들하다. 혹한의 추위를 견디며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을 담은 다큐멘터리를 보며 잠시 마음을 고른다. 그러나 다시 우리 현실로 눈을 돌리면 숨이 막혀온다. 극단으로 치달아 서로를 악마화하기 바쁜 정치판의 막말, 부푼 기대와 절망이 교차하는 주식 시장 과열까지. 공론장은 차분한 토론의 장이 아니라 상대를 무너뜨리려는 전쟁터가 되어버렸다. 진영 논리에 갇힌 사람들의 진흙탕 싸움을 지켜보노라면 깊은 염오(厭惡)와 피로감만 남는다. 담론의 품격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끝없이 증폭되는 욕망의 잔여물뿐이다.
이런 세태를 볼 때마다 그리스 비극 작가 아이스킬로스의 <자비로운 여신들>이 떠오른다. 오레스테스가 아버지를 죽인 어머니 클리타임네스트라를 살해한 뒤 벌어지는 재판을 다룬다. 아폴론은 아버지 원수를 갚은 행위가 정의라고 주장하고, 복수의 여신들은 혈육을 죽인 죄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맞선다. 양쪽 모두 나름의 정당성을 지닌 채 맞서는 이런 구조를 고대 그리스에선 ‘안티로기아’(Antilogia)라 불렀다. 어느 한쪽을 쉽게 악으로 단정할 수 없는, 정의와 정의가 충돌하는 비극적 상황이다. 신들조차 자신만의 정의를 독단적으로 강요할 수 없는 지점이다.
아이스킬로스는 이 난제를 신의 위엄이 아닌 인간의 ‘시민 법정’이라는 제도로 가져와 풀어낸다. 배심원 표결이 동수가 되자 아테나가 마지막 한 표를 던져 오레스테스를 석방한다. 그러나 그녀는 패배한 복수의 여신들을 내쫓지 않는다. 오히려 끈질기게 설득하여 그들을 도시를 지키는 ‘자비로운 여신들’로 받아들인다. 피의 복수는 법의 질서로 전환되고, 적대의 에너지는 공동체를 지키는 힘으로 승화된다. 정의란 어느 한쪽의 완승이 아니라, 충돌하는 정당성을 제도와 대화를 통해 감당해내는 공동체의 지혜임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공론장에는 이러한 겸손한 통찰이 좀처럼 보이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것만이 절대적으로 옳으며, 다른 입장은 제거해야 할 악이라고 확신한다. 복잡한 현실을 견디기보다 단순한 구호와 적대의 언어가 모든 것을 덮어버린다. 모두가 정의를 외치지만, 정작 정의를 가능하게 하는 절제는 점점 사라진다. 말은 상대를 이해하기 위한 다리가 아니라 상대를 공격하는 무기가 되고 있다.
예수는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 아니요 하라”고 가르쳤다. 목에 칼이 들어와도 할 말은 하라는 결연한 저항의 요구가 아니다. 예수는 하늘과 땅을 걸고 맹세하며 자신의 말을 과장하는 태도를 경계하셨다. 진실은 목소리의 크기에서 생기는 것이 아니라, 군더더기를 걷어낸 담백한 언어에서 드러난다. 신뢰는 과장된 수사에서가 아니라 삶과 말이 일치하는 사람에게서 비롯된다.
불의를 보며 분노하는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분노가 정의는 아니다. 분노는 정의를 향한 출발점일 수 있지만, 절제를 잃는 순간 정의는 응징으로, 책임은 보복으로, 신념은 독선으로 변질되기 쉽다. 그래서 고대 철학은 정의를 늘 절제와 함께 이야기했다. 자신을 다스리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공정하게 판단할 수 없다. 소통을 위해 자기 확신이라는 굳은 껍데기를 깰 내적 역량을 길러야 한다.
폭염보다 두려운 것은 타인을 향해 쏟아내는 분노의 열기다. 문명을 지탱해 온 건 맹목적 열정이 아니라 스스로를 경계하는 절제의 힘이다. 내가 옳다는 확신이 단단해질수록 정의가 들어설 공간은 좁아진다. 정의가 폭력이 되지 않기 위해 필요한 것은 상대를 굴복시킬 정교한 논리나 뜨거운 신념이 아니다. 자신의 한계를 인정하는 겸손, 진실을 담담하게 말하는 용기, 내가 틀릴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끝내 포기하지 않는 절제다. 서로의 정당성을 끝까지 경청하려는 인내와 자기 확신을 절제할 줄 아는 시민들 사이에서 비로소 정의는 공동체를 살리는 질서가 된다. 우리는 그럴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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