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권위 “장애인 폭력은 구조적 참사…처벌·제도 개선 촉구” 성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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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인권위원회가 10일 장애인 대상 폭력 사건을 사회의 ‘구조적 참사’로 규정하고 경찰과 고용노동부 등 관계 기관의 실효성 있는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인권위는 이날 안창호 위원장 명의 성명을 내고 “거주 시설 내 성폭력, 염전 내 무급 강제 노동, 장애인표준사업장 내 성폭력 등 장애인에 대한 폭력은 공간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장애와 여성이라는 교차 차별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장애 여성을 향한 젠더 폭력이 연일 보도되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수사 과정에서 장애인의 형사절차 진술권을 보장하는 수사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언급했다. 앞서 인권위는 2024년 직권조사를 통해 수사기관에 진술 조력인 및 신뢰 관계인 동석 보장 등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수사 현장에서 여전히 진술 조력인과 신뢰 관계인 동석 미준수 등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며 “장애인 피해자 진술권 보장을 위한 수사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가 최대 10억원을 지원하는 장애인표준사업장의 관리·감독 부실 문제도 짚었다. 인권위는 현행 제도상 표준사업장 인증을 취소하려면 ‘2년 내 3회 이상’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해야 하는 점, 장애인복지법상 학대신고 의무 대상에 표준사업장이 빠져 있는 점 등을 지속적인 폭력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권위는 중대한 인권침해가 확인된 사업장의 즉시 인증 취소 및 지원금 환수, 장애인표준사업장을 학대신고 의무 기관을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장애인 노동자 개별 면담을 포함한 정기 인권 실태조사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안창호 위원장은 “장애인 노동은 생계 수단을 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자립과 복지의 출발점”이라며 “동향 점검과 진정사건 조사 등을 통해 경찰, 고용노동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아동 성범죄 수사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법무부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미성년자 성범죄로 4차례나 신고되고도 한 번도 기소되지 않은 40대 남성에게 중학생 리아나가 살해된 지 두 달여 만에 수사당국의 총체적 부실이 확인된 것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8일(현지시간) 이번 보고서를 통해 “만성적인 인력 부족, 추적 불가능한 수사 절차, 방치된 수사, 부족한 프로 의식, 훈련되지 않았거나 자격 미달인 수사관 등 총체적 난국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12쪽 분량의 이 문건은 리아나가 살해된 이후 전국 37개 고등검찰청이 아동 성범죄 사건 처리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지난달 29일 제랄드 다르마냉 법무부 장관은 내무부 장관에게 이 문건을 서한 형태로 전달했다.
이번 전수조사의 계기가 된 것은 리아나 살해 사건이다. 지난 6월4일 제르주 플뢰랑스에서 실종된 11세 중학생 리아나가 실종 5일 만에 인근의 한 헛간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제롬 바렐라(41)는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로 4차례 고소됐지만 한 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경찰과 사법당국이 앞선 사건을 적절히 처리했다면 리아나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비판이 일었다.
법무부는 현재 프랑스 전역에서 처리 중인 아동 대상 성폭력 고소 사건이 8만5047건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이 중 사법당국 전산에 등록되지 않은 ‘유령 사건’은 수천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님 지역에서만 1275건, 캉 지역에선 905건이 발견됐다. 사건 서류가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부르주 지역에선 약 15건의 사건 서류가 분실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기관의 정보기술(IT) 시스템이 심각하게 노후화된 것도 문제로 지목됐다. 경찰의 사건 작성 시스템이 낡아 디지털로 생성된 수백쪽의 문서를 수사관들이 일일이 종이로 다시 출력하는 상황이었다. 샹베리 지역의 경우 수사 시스템의 추적 기능이 부실하거나 작동하지 않는 상태여서 일부 사건은 어느 부서에 있는지 확인조차 어려웠고 일부는 분실 처리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관들의 전문성 문제도 지적됐다. 보르도와 브장송 등에선 비전문 인력이 아동 진술을 받거나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한 사례가 확인됐다. 수사관 인력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아미앵 지역에선 수사관 3명이 각자 300건이 넘는 사건을 맡고 있었고, 르망에선 가정보호팀 수사관 6명이 4000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했다. 심지어 그라스 지역에선 2022년 전문 수사팀 자체가 없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두고 법무부와 내무부 간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고 르몽드는 분석했다. 일부 경찰 간부는 법무부의 이번 문건이 검찰의 책임 회피용이라고 비판했다. 다르마냉 장관은 “이 문건은 수사 인력과 사법적 노력의 비참한 실태를 보여준다”며 다음달 3일 법무부·내무부 간 합동회의를 열어 실태 파악 및 대책 마련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원형 스크린에 8채널 영상 펼치는‘함양아: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결국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곁에 머물며 불안을 말하는 것”
거대한 원형 화면,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또 다른 장면이 이어진다. 정부 기관과 중앙은행, 고층 빌딩이 오려 붙인 듯 서 있고, 애플·맥도날드 등 기업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기업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무언가 논의하고, 검은 옷의 군중과 팻말을 든 시위대는 떼 지어 움직인다. 개별적인 장면들이 하나둘 맞물리며, 오늘의 정치·자본·노동·일상이 얽힌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에서 함양아는 8채널 영상으로 전시장을 빙 두른 원형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신작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을 선보인다.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는 함양아가 2018년부터 이어온 장기 예술 연구 프로젝트다. 금융·정치·기술·교육·노동 등 현대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데이터를 수집, 분류, 추상화해 인물과 건축물, 각종 기호가 겹쳐진 ‘무빙 이미지 콜라주’로 서사를 구축한다. 1.0 이후 버전을 거듭하며 사회구조와 그 안의 개인을 추적해왔다.
22분 분량으로 선보이는 신작은 넘실대는 바다와 파묘를 담은 실사 영상으로 시작한다. 장례 행렬이 파노라마 속으로 들어서면서 장면은 거대한 사회 풍경으로 전환된다. 197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의 부상에서 세계화와 금융화, 디지털 혁명, 팬데믹, 기후위기에 이르는 거대 서사와 탄생과 죽음, 일상과 노동 등 미시적 삶이 교차한다. 작가는 “개인의 고통은 개인의 삶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는 관계망”을 파노라마 안에 펼쳐놓는다.
멀찍이 보면 오늘의 세계를 펼친 풍속화 같고, 가까이 다가가면 수많은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는 온라인 게임 속 ‘오픈 월드’를 떠올리게 한다. 어느 군상을 좇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읽히고, 화면 전체는 좀처럼 한눈에 잡히지 않는다.
19세기 서구의 파노라마가 세계를 하나의 시점에서 조망하는 경험을 제공했다면, 함양아의 파노라마는 복잡하게 얽힌 오늘의 세계가 하나의 시선으로 포착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전 작업이 시장, 제도와 같은 거시 구조에 무게를 뒀다면, 4.0은 그러한 흐름이 인간과 생태계에 남긴 흔적으로 시선을 넓힌다. 이야기는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바다에서 출발한 영상의 마지막은 다시 바다로 이어진다. 원형 공간과 순환하는 서사가 겹쳐지며, 관람객은 그 안에서 끊임없는 발전을 전제한 진보의 서사가 아닌 대안적 패러다임을 떠올리게 된다.
파노라마 작업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시스템의 붕괴와 개인·공동체의 고통을 마주한 함양아가 ‘작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며 시작됐다. 전시에선 ‘잠’ ‘주림 2.0’ 등을 통해 그 질문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신작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는 세계 곳곳에서 개인들의 독백을 수집해 ‘파노라마’의 거대한 서사 안으로 삶의 목소리를 잇는다.
데이터를 수집해 사회구조를 분석하는 일이라면 사회과학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함양아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곁에 머물며 불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0월4일까지.
인권위는 이날 안창호 위원장 명의 성명을 내고 “거주 시설 내 성폭력, 염전 내 무급 강제 노동, 장애인표준사업장 내 성폭력 등 장애인에 대한 폭력은 공간을 가리지 않고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장애와 여성이라는 교차 차별로 취약한 위치에 있는 장애 여성을 향한 젠더 폭력이 연일 보도되는 상황은 우리 사회의 자성을 촉구하고 있다”고 밝혔다.
인권위는 수사 과정에서 장애인의 형사절차 진술권을 보장하는 수사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재차 언급했다. 앞서 인권위는 2024년 직권조사를 통해 수사기관에 진술 조력인 및 신뢰 관계인 동석 보장 등을 권고한 바 있다.
인권위는 “수사 현장에서 여전히 진술 조력인과 신뢰 관계인 동석 미준수 등 2차 피해를 예방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다는 문제 제기가 계속되고 있다”며 “장애인 피해자 진술권 보장을 위한 수사기관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이어 장애인 일자리 창출을 위해 정부가 최대 10억원을 지원하는 장애인표준사업장의 관리·감독 부실 문제도 짚었다. 인권위는 현행 제도상 표준사업장 인증을 취소하려면 ‘2년 내 3회 이상’ 중대한 인권침해가 발생해야 하는 점, 장애인복지법상 학대신고 의무 대상에 표준사업장이 빠져 있는 점 등을 지속적인 폭력의 원인으로 꼽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으로 인권위는 중대한 인권침해가 확인된 사업장의 즉시 인증 취소 및 지원금 환수, 장애인표준사업장을 학대신고 의무 기관을 포함할 것을 제안했다. 이와 함께 장애인 노동자 개별 면담을 포함한 정기 인권 실태조사 의무화 등을 제시했다.
안창호 위원장은 “장애인 노동은 생계 수단을 넘어 세상으로 나아가는 자립과 복지의 출발점”이라며 “동향 점검과 진정사건 조사 등을 통해 경찰, 고용노동부,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프랑스의 아동 성범죄 수사 시스템이 사실상 붕괴 상태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법무부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미성년자 성범죄로 4차례나 신고되고도 한 번도 기소되지 않은 40대 남성에게 중학생 리아나가 살해된 지 두 달여 만에 수사당국의 총체적 부실이 확인된 것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8일(현지시간) 이번 보고서를 통해 “만성적인 인력 부족, 추적 불가능한 수사 절차, 방치된 수사, 부족한 프로 의식, 훈련되지 않았거나 자격 미달인 수사관 등 총체적 난국이 드러났다”고 보도했다. 12쪽 분량의 이 문건은 리아나가 살해된 이후 전국 37개 고등검찰청이 아동 성범죄 사건 처리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다. 지난달 29일 제랄드 다르마냉 법무부 장관은 내무부 장관에게 이 문건을 서한 형태로 전달했다.
이번 전수조사의 계기가 된 것은 리아나 살해 사건이다. 지난 6월4일 제르주 플뢰랑스에서 실종된 11세 중학생 리아나가 실종 5일 만에 인근의 한 헛간에서 시신으로 발견됐다. 사건 용의자로 체포된 제롬 바렐라(41)는 미성년자 대상 성범죄로 4차례 고소됐지만 한 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경찰과 사법당국이 앞선 사건을 적절히 처리했다면 리아나의 죽음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란 비판이 일었다.
법무부는 현재 프랑스 전역에서 처리 중인 아동 대상 성폭력 고소 사건이 8만5047건에 달한다고 집계했다. 이 중 사법당국 전산에 등록되지 않은 ‘유령 사건’은 수천건에 달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님 지역에서만 1275건, 캉 지역에선 905건이 발견됐다. 사건 서류가 아예 사라지기도 했다. 부르주 지역에선 약 15건의 사건 서류가 분실된 것으로 조사됐다.
수사기관의 정보기술(IT) 시스템이 심각하게 노후화된 것도 문제로 지목됐다. 경찰의 사건 작성 시스템이 낡아 디지털로 생성된 수백쪽의 문서를 수사관들이 일일이 종이로 다시 출력하는 상황이었다. 샹베리 지역의 경우 수사 시스템의 추적 기능이 부실하거나 작동하지 않는 상태여서 일부 사건은 어느 부서에 있는지 확인조차 어려웠고 일부는 분실 처리된 것으로 파악됐다.
수사관들의 전문성 문제도 지적됐다. 보르도와 브장송 등에선 비전문 인력이 아동 진술을 받거나 피해자에게 부적절한 질문을 한 사례가 확인됐다. 수사관 인력 부족 문제도 심각하다. 아미앵 지역에선 수사관 3명이 각자 300건이 넘는 사건을 맡고 있었고, 르망에선 가정보호팀 수사관 6명이 4000건의 사건을 처리해야 했다. 심지어 그라스 지역에선 2022년 전문 수사팀 자체가 없어진 것으로 드러났다.
이 사건을 두고 법무부와 내무부 간 ‘책임 떠넘기기’를 하고 있다고 르몽드는 분석했다. 일부 경찰 간부는 법무부의 이번 문건이 검찰의 책임 회피용이라고 비판했다. 다르마냉 장관은 “이 문건은 수사 인력과 사법적 노력의 비참한 실태를 보여준다”며 다음달 3일 법무부·내무부 간 합동회의를 열어 실태 파악 및 대책 마련에 나서자고 제안했다.
원형 스크린에 8채널 영상 펼치는‘함양아: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결국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은곁에 머물며 불안을 말하는 것”
거대한 원형 화면,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또 다른 장면이 이어진다. 정부 기관과 중앙은행, 고층 빌딩이 오려 붙인 듯 서 있고, 애플·맥도날드 등 기업 로고가 눈에 들어온다. 기업가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무언가 논의하고, 검은 옷의 군중과 팻말을 든 시위대는 떼 지어 움직인다. 개별적인 장면들이 하나둘 맞물리며, 오늘의 정치·자본·노동·일상이 얽힌 하나의 세계를 이룬다.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는 ‘함양아: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에서 함양아는 8채널 영상으로 전시장을 빙 두른 원형 스크린을 통해 펼쳐지는 신작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 4.0’을 선보인다. ‘정의되지 않은 파노라마’는 함양아가 2018년부터 이어온 장기 예술 연구 프로젝트다. 금융·정치·기술·교육·노동 등 현대사회의 여러 영역에서 데이터를 수집, 분류, 추상화해 인물과 건축물, 각종 기호가 겹쳐진 ‘무빙 이미지 콜라주’로 서사를 구축한다. 1.0 이후 버전을 거듭하며 사회구조와 그 안의 개인을 추적해왔다.
22분 분량으로 선보이는 신작은 넘실대는 바다와 파묘를 담은 실사 영상으로 시작한다. 장례 행렬이 파노라마 속으로 들어서면서 장면은 거대한 사회 풍경으로 전환된다. 1970년대 후반 신자유주의의 부상에서 세계화와 금융화, 디지털 혁명, 팬데믹, 기후위기에 이르는 거대 서사와 탄생과 죽음, 일상과 노동 등 미시적 삶이 교차한다. 작가는 “개인의 고통은 개인의 삶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며 “수많은 원인과 결과가 연결되는 관계망”을 파노라마 안에 펼쳐놓는다.
멀찍이 보면 오늘의 세계를 펼친 풍속화 같고, 가까이 다가가면 수많은 사건이 동시에 진행되는 온라인 게임 속 ‘오픈 월드’를 떠올리게 한다. 어느 군상을 좇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가 읽히고, 화면 전체는 좀처럼 한눈에 잡히지 않는다.
19세기 서구의 파노라마가 세계를 하나의 시점에서 조망하는 경험을 제공했다면, 함양아의 파노라마는 복잡하게 얽힌 오늘의 세계가 하나의 시선으로 포착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이전 작업이 시장, 제도와 같은 거시 구조에 무게를 뒀다면, 4.0은 그러한 흐름이 인간과 생태계에 남긴 흔적으로 시선을 넓힌다. 이야기는 직선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바다에서 출발한 영상의 마지막은 다시 바다로 이어진다. 원형 공간과 순환하는 서사가 겹쳐지며, 관람객은 그 안에서 끊임없는 발전을 전제한 진보의 서사가 아닌 대안적 패러다임을 떠올리게 된다.
파노라마 작업은 2014년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시스템의 붕괴와 개인·공동체의 고통을 마주한 함양아가 ‘작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를 물으며 시작됐다. 전시에선 ‘잠’ ‘주림 2.0’ 등을 통해 그 질문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다. 신작 ‘듣는 화자, 말하는 타자’는 세계 곳곳에서 개인들의 독백을 수집해 ‘파노라마’의 거대한 서사 안으로 삶의 목소리를 잇는다.
데이터를 수집해 사회구조를 분석하는 일이라면 사회과학이 더 적합하지 않을까. 함양아는 “불확실한 세계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결국 ‘듣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면서 “곁에 머물며 불안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예술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10월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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