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산이혼전문변호사 [책과 삶]조용필은 왜 일본서 ‘엔카’만 불렀나···‘동백아가씨’부터 뉴진스까지 한일 대중음악 6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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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이혼전문변호사 한일 대중음악사
김성민 지음 | 글항아리 | 368쪽 | 2만2000원
한국 기획사 어도어가 만든 다국적 걸그룹 뉴진스는 2024년 6월 일본 도쿄돔에서 팬미팅을 열었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호주와 베트남 복수국적을 가진 멤버 하니가 일본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의 1980년작 ‘푸른 산호초’를 부른 장면이었다. 1980년 한국에서 일본 음악은 금지돼 있었기에, ‘푸른 산호초’는 당시 한국인들이 몰래 찾아 들어야 하는 노래였다. 홋카이도대학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원 교수인 김성민은 이 공연을 “금지되었던 제이팝이 ‘케이팝의 시대’에 소환되어 수십 년 동안 한일 양국에 축적된 경험과 기억을 새롭게 환기”한 상징적 무대였다고 본다.
한일 양국의 복잡한 역사적 관계만큼 대중음악의 교류도 단선적이지 않았다. “사람과 물자의 초국적 이동, 정치경제적 조건의 변화, 그리고 음악산업과 미디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배경에 깔려 있었다. <한일 대중음악사>는 2024년 일본에서 출간돼 호평받았고, 저자가 직접 한국어로 다시 옮긴 책이다.
1965년 한국에서 ‘왜색’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된 ‘동백아가씨’를 이미자가 이듬해 7월 일본의 텔레비전쇼에 나와 노래하는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서양음악을 수용·융합하여 형성된 일본 노래와 서양 및 일본음악을 함께 받아들이며 형성된 한국 노래 사이의 유사성을 단순히 ‘왜색’으로 규정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탈일본화를 주창하는 문화 민족주의는 “식민지 시대의 검열이라는 부정적 유산을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제도적·사회적으로 계승하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을 낳았다.”
적극적인 문화 교류가 불가능했던 시기에 양국의 대중음악은 각기 다른 궤적을 그렸다. 양국의 ‘정치적·경제적 시간차’가 음악에 작용한 것이다. 전공투의 시기였던 1960년대 후반 유행했던 ‘프로테스트 포크’가 197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 뒤, 일본에서는 매우 사적인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반면 한국의 청년들은 1970년대 이후 줄곧 정치의 주체였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저항 음악은 꾸준히 만들어졌다.
다른 한쪽에선 세계 2위의 음악 대국이었던 일본 진출을 향한 한국 음악인들의 욕망도 두드러졌다.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일본어 가사로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끈 이성애를 시작으로 요시야 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작곡가 길옥윤, ‘디바’ 패티김, ‘아이돌’ 혜은이, 그리고 ‘가왕’ 조용필의 일본 활동이 이어졌다. 다만 이들의 활동은 철저히 ‘한국 엔카’라는 일본식 재해석 틀 안에 있었다. 한국에서 ‘팝의 여왕’이었던 패티김은 일본에서 ‘도라지타령’ ‘목포의 눈물’ 리메이크를 앞세워 활동했다. 한국에서 발라드, 록, 민요 등 다채로운 음악 스펙트럼을 선보였던 조용필조차 일본 시장에선 자신의 넓은 음악취향을 봉인해야 했다. 일본 시장은 “일본 가수에게는 없는 폭발력과 유연함”을 가진 아시아 가수의 엔카를 찾았다.
조용필이 1988년 서울을 찾은 일본 외무대신 우노 소스케에게 재일 한국인·조선인의 지문 날인 문제를 언급한 것은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1965년 체제’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타자’로 서로를 마주했다. 이 시기는 1980년대까지의 ‘한국 엔카’와 2000년대 이후의 ‘케이팝’의 이행기였다.
저자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케이팝의 ‘원점’이라고 본다. “미국의 힙합을 내면화한 스타일 속에는 일본 사회에서 익히 공유되어온 ‘조선·한국적인 것’의 스테레오타입은 물론 일본의 영향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은이 전곡 작사·작곡·보컬을 하고 일본 뮤지션이 편곡·엔지니어로 참여한 음반 <공무도하가>는 이 시기 ‘최대의 음악적 성과’였다. 이 음반은 한국의 성공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고, 일본의 고정관념에 맞춘 음악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한일 합작’이었다. 이 시기 한국의 청중 역시 정교한 편곡, 연주, 세련된 사운드가 특징인 제이팝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기 시작했다. 티 스퀘어, 카시오페아 같은 퓨전 재즈와 엑스 재팬의 록을 듣는 한국 청년들은 “일본 음악 향유가 한일이라는 특정한 문맥 안에서만 해석되는 것에 저항했다.”
싸이, 트와이스, 블랙핑크, 그리고 BTS의 성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21세기 한국 대중음악의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강력하다. 일본에서 국제적 스타를 배출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아시아의 이종 혼합적인 공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보다 이미 정립된 일본 문화를 보존하고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를 기존 틀 안에서 유지하려는 방향을 선택했다.”
제이팝과 달리 케이팝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장르인 힙합을 앞장서 수용했고, SM·YG·JYP라는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기획사의 경쟁을 경험했다. “일본형 아이돌이 안정적이지만 확장성이 제한된 아이돌의 지위를 확립했다면, 한국형 아이돌은 높은 확장성을 지녔으나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약한 양식”을 보였다. 일본 업계가 광대한 자국 시장을 겨냥한 ‘리스크 관리’에 치중했다면, 한국 업계는 세계 시장을 향한 욕망과 상상력을 발동한 것이다. 일본 시장에 한계를 느낀 일본 젊은이들이 케이팝 아이돌을 꿈꾸며 한국을 찾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도 벌어졌다. HKT48 멤버였다가 한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는 르세라핌으로 활동 중인 미야와키 사쿠라가 한 사례다. 한국의 대중 역시 아이묭, 후지이 가제, 요네즈 겐시, 요아소비 등 케이팝에 없는 감성을 가진 제이팝을 자연스럽게 듣고 있다.
저자가 케이팝과 제이팝의 위계를 강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대중음악을 매개로 한 한일 상호 인식의 역사서”를 표방한다.
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채영이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난다.
채영은 13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제 곁에 항상 있어준 가족인 원스(팬덤명)에게 가장 먼저 저에 대한 소식을 직접 알리고 싶었다”며 “저는 저만의 ‘릴 판타지’(LIL FANTASY) 세상에서 음악 활동들을 만들어 나가려고 한다”고 홀로서기 소식을 알렸다. ‘릴 판타지’는 작년에 나온 채영의 첫 솔로 앨범명이기도 하다.
이어 그는 “14년 동안 말괄량이인 저를 서포트해 주시고 믿어주신 JYP 회사 분들과 트와이스 팀에게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다”며 “옆에서 든든히 응원해 주고 힘이 되어준 우리 멤버들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채영은 솔로 가수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새 소속사의 형태에 대해선 논의 중이다.
홀로서기 후에도 트와이스 그룹 활동은 이어갈 예정이다. 채영은 “트와이스 활동은 변함없이 해나갈 것이란 말도 하고 싶다”고 강조하며 “제가 이렇게 사랑받아온 이유는 제 뿌리인 트와이스로서 활동해온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5년 데뷔한 트와이스 멤버들은 JYP엔터테인먼트와 개인 및 그룹 활동에 대한 재계약을 논의 중이다.
채영에 앞서 다른 멤버 정연도 JYP를 떠나 최근 친언니이자 배우 공승연의 소속사 바로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권창영 2차 종합특별검사팀이 12·3 불법계엄 가담 의혹을 받는 강호필 전 육군 지상작전사령관을 재판에 넘겼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팀은 이날 강 전 사령관과 당시 박재열 전 7군단장을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강 전 사령관은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상작전사령부 내부 상황실 구성, 위기조치반과 사령부 전 간부 소집을 지시해 내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당시 강 전 사령관이 지휘한 지작사는 계엄 선포 직후인 3일 오후 10시36분 음성 동보 시스템(다수에게 동시에 안내방송 등을 전파하는 시스템)을 통해 위기조치반을 소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 특검은 강 전 사령관이 계엄 직후 지구계엄사령관 역할을 맡아 예하 지역계엄사 구성을 지시하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휘 아래 예하 부대 출동을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 박 전 군단장도 강 전 사령관과 함께 지구계엄사 구성 등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포고령 위반 교육’ 등을 수행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특검은 강 전 사령관이 계엄 실행 전부터 관련 논의에 참여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계엄 선포 약 한달 전 작성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의 휴대전화 메모에는 ‘ㅈㅌㅅㅂ의 공통된 의견임’ ‘4인은 각오하고 있음’ ‘적 행동이 먼저임. 전시 또는 경찰력으로 통제 불가 상황이 와야 함’ 등의 문구가 적힌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여기 등장하는 ‘ㅈㅌㅅㅂ’가 지상작전사령관과 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방첩사령관을 축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전 사령관을 제외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사령관은 이미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앞서 비상계엄과 관련해 수사한 조은석 내란특검은 지작사가 실제 병력을 투입하거나 구체적 임무를 수행한 정황이 없다고 보고 강 전 사령관을 기소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반면 종합특검은 강 전 사령관이 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고 지난달 법원에 강 전 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김성민 지음 | 글항아리 | 368쪽 | 2만2000원
한국 기획사 어도어가 만든 다국적 걸그룹 뉴진스는 2024년 6월 일본 도쿄돔에서 팬미팅을 열었다. 특히 화제가 된 것은 호주와 베트남 복수국적을 가진 멤버 하니가 일본 아이돌 마쓰다 세이코의 1980년작 ‘푸른 산호초’를 부른 장면이었다. 1980년 한국에서 일본 음악은 금지돼 있었기에, ‘푸른 산호초’는 당시 한국인들이 몰래 찾아 들어야 하는 노래였다. 홋카이도대학 대학원 미디어커뮤니케이션 연구원 교수인 김성민은 이 공연을 “금지되었던 제이팝이 ‘케이팝의 시대’에 소환되어 수십 년 동안 한일 양국에 축적된 경험과 기억을 새롭게 환기”한 상징적 무대였다고 본다.
한일 양국의 복잡한 역사적 관계만큼 대중음악의 교류도 단선적이지 않았다. “사람과 물자의 초국적 이동, 정치경제적 조건의 변화, 그리고 음악산업과 미디어를 연결하는 네트워크”가 배경에 깔려 있었다. <한일 대중음악사>는 2024년 일본에서 출간돼 호평받았고, 저자가 직접 한국어로 다시 옮긴 책이다.
1965년 한국에서 ‘왜색’이라는 이유로 방송 금지된 ‘동백아가씨’를 이미자가 이듬해 7월 일본의 텔레비전쇼에 나와 노래하는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서양음악을 수용·융합하여 형성된 일본 노래와 서양 및 일본음악을 함께 받아들이며 형성된 한국 노래 사이의 유사성을 단순히 ‘왜색’으로 규정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오히려 탈일본화를 주창하는 문화 민족주의는 “식민지 시대의 검열이라는 부정적 유산을 해방 이후 한국사회에서 제도적·사회적으로 계승하는 매우 역설적인 상황을 낳았다.”
적극적인 문화 교류가 불가능했던 시기에 양국의 대중음악은 각기 다른 궤적을 그렸다. 양국의 ‘정치적·경제적 시간차’가 음악에 작용한 것이다. 전공투의 시기였던 1960년대 후반 유행했던 ‘프로테스트 포크’가 1970년대 이후 자취를 감춘 뒤, 일본에서는 매우 사적인 노래가 인기를 끌었다. 반면 한국의 청년들은 1970년대 이후 줄곧 정치의 주체였다. 박정희 정권의 탄압에도 불구하고 저항 음악은 꾸준히 만들어졌다.
다른 한쪽에선 세계 2위의 음악 대국이었던 일본 진출을 향한 한국 음악인들의 욕망도 두드러졌다. 남진의 ‘가슴 아프게’를 일본어 가사로 다시 불러 큰 인기를 끈 이성애를 시작으로 요시야 준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 작곡가 길옥윤, ‘디바’ 패티김, ‘아이돌’ 혜은이, 그리고 ‘가왕’ 조용필의 일본 활동이 이어졌다. 다만 이들의 활동은 철저히 ‘한국 엔카’라는 일본식 재해석 틀 안에 있었다. 한국에서 ‘팝의 여왕’이었던 패티김은 일본에서 ‘도라지타령’ ‘목포의 눈물’ 리메이크를 앞세워 활동했다. 한국에서 발라드, 록, 민요 등 다채로운 음악 스펙트럼을 선보였던 조용필조차 일본 시장에선 자신의 넓은 음악취향을 봉인해야 했다. 일본 시장은 “일본 가수에게는 없는 폭발력과 유연함”을 가진 아시아 가수의 엔카를 찾았다.
조용필이 1988년 서울을 찾은 일본 외무대신 우노 소스케에게 재일 한국인·조선인의 지문 날인 문제를 언급한 것은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1965년 체제’가 바뀌고 있다는 사실을 상징적으로 보여준 장면이었다. 1990년대 들어 한국과 일본은 ‘새로운 타자’로 서로를 마주했다. 이 시기는 1980년대까지의 ‘한국 엔카’와 2000년대 이후의 ‘케이팝’의 이행기였다.
저자는 서태지와 아이들을 케이팝의 ‘원점’이라고 본다. “미국의 힙합을 내면화한 스타일 속에는 일본 사회에서 익히 공유되어온 ‘조선·한국적인 것’의 스테레오타입은 물론 일본의 영향조차 전혀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상은이 전곡 작사·작곡·보컬을 하고 일본 뮤지션이 편곡·엔지니어로 참여한 음반 <공무도하가>는 이 시기 ‘최대의 음악적 성과’였다. 이 음반은 한국의 성공을 기반으로 하지 않았고, 일본의 고정관념에 맞춘 음악도 아닌, 새로운 형태의 ‘한일 합작’이었다. 이 시기 한국의 청중 역시 정교한 편곡, 연주, 세련된 사운드가 특징인 제이팝을 자연스럽게 수용하기 시작했다. 티 스퀘어, 카시오페아 같은 퓨전 재즈와 엑스 재팬의 록을 듣는 한국 청년들은 “일본 음악 향유가 한일이라는 특정한 문맥 안에서만 해석되는 것에 저항했다.”
싸이, 트와이스, 블랙핑크, 그리고 BTS의 성공으로 잘 알려져 있다시피 21세기 한국 대중음악의 영향력은 세계적으로 강력하다. 일본에서 국제적 스타를 배출하려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다만 1990년대 이후 일본은 “아시아의 이종 혼합적인 공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보다 이미 정립된 일본 문화를 보존하고 일본과 아시아의 관계를 기존 틀 안에서 유지하려는 방향을 선택했다.”
제이팝과 달리 케이팝은 세계적으로 인기를 끈 장르인 힙합을 앞장서 수용했고, SM·YG·JYP라는 각기 다른 색깔을 가진 기획사의 경쟁을 경험했다. “일본형 아이돌이 안정적이지만 확장성이 제한된 아이돌의 지위를 확립했다면, 한국형 아이돌은 높은 확장성을 지녔으나 상대적으로 안정성이 약한 양식”을 보였다. 일본 업계가 광대한 자국 시장을 겨냥한 ‘리스크 관리’에 치중했다면, 한국 업계는 세계 시장을 향한 욕망과 상상력을 발동한 것이다. 일본 시장에 한계를 느낀 일본 젊은이들이 케이팝 아이돌을 꿈꾸며 한국을 찾는,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일도 벌어졌다. HKT48 멤버였다가 한국의 오디션 프로그램을 거쳐 현재는 르세라핌으로 활동 중인 미야와키 사쿠라가 한 사례다. 한국의 대중 역시 아이묭, 후지이 가제, 요네즈 겐시, 요아소비 등 케이팝에 없는 감성을 가진 제이팝을 자연스럽게 듣고 있다.
저자가 케이팝과 제이팝의 위계를 강조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오히려 “이 책은 대중음악을 매개로 한 한일 상호 인식의 역사서”를 표방한다.
그룹 트와이스의 멤버 채영이 JYP엔터테인먼트를 떠난다.
채영은 13일 자신의 SNS를 통해 “제 곁에 항상 있어준 가족인 원스(팬덤명)에게 가장 먼저 저에 대한 소식을 직접 알리고 싶었다”며 “저는 저만의 ‘릴 판타지’(LIL FANTASY) 세상에서 음악 활동들을 만들어 나가려고 한다”고 홀로서기 소식을 알렸다. ‘릴 판타지’는 작년에 나온 채영의 첫 솔로 앨범명이기도 하다.
이어 그는 “14년 동안 말괄량이인 저를 서포트해 주시고 믿어주신 JYP 회사 분들과 트와이스 팀에게 감사하다는 말 전하고 싶다”며 “옆에서 든든히 응원해 주고 힘이 되어준 우리 멤버들에게도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했다.
채영은 솔로 가수로 새로운 모습을 선보일 예정이다. 새 소속사의 형태에 대해선 논의 중이다.
홀로서기 후에도 트와이스 그룹 활동은 이어갈 예정이다. 채영은 “트와이스 활동은 변함없이 해나갈 것이란 말도 하고 싶다”고 강조하며 “제가 이렇게 사랑받아온 이유는 제 뿌리인 트와이스로서 활동해온 시간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2015년 데뷔한 트와이스 멤버들은 JYP엔터테인먼트와 개인 및 그룹 활동에 대한 재계약을 논의 중이다.
채영에 앞서 다른 멤버 정연도 JYP를 떠나 최근 친언니이자 배우 공승연의 소속사 바로엔터테인먼트와 전속계약을 체결했다.
권창영 2차 종합특별검사팀이 12·3 불법계엄 가담 의혹을 받는 강호필 전 육군 지상작전사령관을 재판에 넘겼다.
14일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팀은 이날 강 전 사령관과 당시 박재열 전 7군단장을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강 전 사령관은 2024년 12월3일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지상작전사령부 내부 상황실 구성, 위기조치반과 사령부 전 간부 소집을 지시해 내란에 가담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당시 강 전 사령관이 지휘한 지작사는 계엄 선포 직후인 3일 오후 10시36분 음성 동보 시스템(다수에게 동시에 안내방송 등을 전파하는 시스템)을 통해 위기조치반을 소집한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 특검은 강 전 사령관이 계엄 직후 지구계엄사령관 역할을 맡아 예하 지역계엄사 구성을 지시하고,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지휘 아래 예하 부대 출동을 지시했다고 보고 있다. 당시 박 전 군단장도 강 전 사령관과 함께 지구계엄사 구성 등에 적극적으로 가담하고 ‘포고령 위반 교육’ 등을 수행했다는 혐의를 받는다.
특검은 강 전 사령관이 계엄 실행 전부터 관련 논의에 참여했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계엄 선포 약 한달 전 작성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의 휴대전화 메모에는 ‘ㅈㅌㅅㅂ의 공통된 의견임’ ‘4인은 각오하고 있음’ ‘적 행동이 먼저임. 전시 또는 경찰력으로 통제 불가 상황이 와야 함’ 등의 문구가 적힌 것으로 나타났다.
특검은 여기 등장하는 ‘ㅈㅌㅅㅂ’가 지상작전사령관과 특수전사령관, 수도방위사령관, 방첩사령관을 축약한 것으로 보고 있다. 강 전 사령관을 제외한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여인형 전 사령관은 이미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져 1심 선고를 앞두고 있다.
앞서 비상계엄과 관련해 수사한 조은석 내란특검은 지작사가 실제 병력을 투입하거나 구체적 임무를 수행한 정황이 없다고 보고 강 전 사령관을 기소 대상에서 제외한 바 있다. 반면 종합특검은 강 전 사령관이 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했다고 보고 지난달 법원에 강 전 사령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에서 기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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